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4일 영수회담은 시종 냉랭하고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1시간반 동안의 회담은 언제 위험수위를 넘을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 계속됐다.
인사말부터 가시가 돋쳐 있었다. 김대통령이 “오늘 날씨가 춥습니다”고 하자 이총재는 “민심도 춥고 경제도 춥습니다. 추운 목소리를 전달하러 나왔습니다”고 대답했다. 이어 김대통령이 “더운 바람이 불어 추위를 이겨내도록 해야지요. 추위는 언젠가는 물러갑니다”고 하자 이총재는 “국민이 추위를 타지 않게 해야지요”라고 응대했다.
테이블에 마주앉은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논쟁을 벌였으나 어느 쪽도 조금도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이총재가 “대통령이 야당을 할 때 싸웠던 독재정권이 하던 말과 뭐가 다르냐”고 하자 김대통령은 “야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면 내가 어떻게 해보겠느냐”고 맞받았다.
또 “‘의원 꿔주기’가 정도(正道) 정치이냐”는 이총재의 추궁에 김대통령이 “광의의 정도 정치다”고 대답하자 이총재는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이총재의 목소리가 너무 커 차를 가지고 회담장에 들어왔던 여직원이 깜짝 놀라 다시 나가기도 했다.
결국 회담은 이총재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서 끝났다. 이총재는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곧바로 당사로 돌아온 이총재는 격앙된 목소리로 “결론적으로 말해 실망했다. 매우 슬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을 통해 ‘회담 결렬’을 선언했다. 권대변인은 “옮기지 못할 험악한 얘기가 많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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