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열(왼쪽)·박경민
각종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율을 늘리기 위해 정부와 민주당이 추진중인 증시육성방안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찬성론자들을 선진국에서처럼 연기금의 주식투자 비중을 높여 주식시장의 건전한 중심세력을 키우는 것이 현 자금경색 돌파와 장기적 증시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이같은 조치가 일시적 호재 이상의 성과를 갖기는 무리이며 운용 잘못에 따른 위험부담이 늘어나 연기금 관리에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찬성/장기투자로 증시 선진화 도움▼
현재 우리 금융시장의 경색은 자본시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데서 연유한 면이 크다. 회사채 시장이 거의 마비돼 초우량 기업을 제외하고는 기업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고, 주식시장이 침체돼 증자를 통한 자금 조달도 원활하지 못하다.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대출을 꺼리기 때문에 기업들은 어떤 형태의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아 자금 경색 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자본시장이 정상적으로 성장 발전하려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 수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 주식시장에서는 장기 투자 수요인 기관투자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선진국 자본시장에 비해 매우 낮다. 소유 기준으로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약 60%이고 기관투자가의 비중은 약 40%인데, 미국은 거꾸로 개인투자자 비중이 40%이고 기관투자가 비중은 60%다. 영국이나 일본도 미국과 비슷하다. 거래량 기준으로 보면 우리의 개인 투자자 비중은 거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기관투자가에 비해 정보 수집이나 분석 능력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개인투자자가 이처럼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자본시장의 거래회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주가 변동성도 높아지는 원인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시장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기관투자가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 특히 기업 연금제도를 확대 도입해 선진국처럼 기관투자가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 세력으로 참여하게 해야 한다.
최근 정부 여당이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확대하려는 것은 자본시장의 장기 안정적인 투자수요를 확대함으로써 증권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각종 연기금의 성격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주식 투자를 확대, 투자 위험을 증폭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우선 해야 할 일은 주식 투자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기금관리기본법, 개별 기금설치법 및 공공기금의 여유 자금마저도 원칙적으로 공공자금기금에의 예탁을 의무화하고 있는 공공자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고 각 기금의 내부 자산 운용 지침을 고쳐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각종 연기금이 자율적으로 자기의 특성을 고려하여 주식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연기금으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주식 투자를 원활하게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또 다른 제도가 매년 실시하는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이다. 이들 두 감사는 1년의 운용 결과를 놓고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기관이나 기금 운용자를 문책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는 이들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주식 투자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 4∼5년의 투자 성과를 갖고 운용 실적을 평가하는 감사제도로 전환해야 이들 연기금이 장기 투자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최운열(한국증권연구원·서강대교수)
▼반대/위험부담 커 '안정적 운용' 역행▼
지금처럼 주식시장이 어려울 때에는 연기금 자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물론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주식시장이 안정될 수만 있다면 쌍수를 들고 모두가 환영할 만한 일일 수 있다. 한국처럼 대다수의 국민이 주식 투자에 몰입해 있는 상황에서는 주식시장이 공황상태에 이르도록 방치했을 경우 피해를 보는 주식투자가가 대부분 연기금의 가입자이기도 하므로,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는 본질적으로 자기 구제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금가입자는 연금을 은행예금처럼 확정이자성 자산으로 간주하면서 노후대책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손실은 미처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지난 20∼30년 동안 주식투자 수익률은 채권투자 수익률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처럼 주식투자의 우월한 장기수익률을 내세워 주식투자의 확대를 합리화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종합주가지수는 1980년부터 지난 해 말까지 연율로 7.9% 상승에 그쳤다. 주식시장이 대활황을 보였던 1999년 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12.3%에 불과한 상황이다. 주식투자에 수반되는 위험(리스크)을 감안한다면 결코 충분한 수익률이라고 할 수 없다. 연기금을 탁월한 펀드매니저가 맡아 운용할 경우, 이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주식투자 규모가 대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구나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서 연기금의 투자 시점과 규모를 결정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또 앞으로 금융기관에 들어간 공적자금을 회수할 때 정부는 주식시장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명분으로 주식투자 비중이 확대된 연기금을 정부 보유지분의 손쉬운 매각처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공기업의 정부 보유지분 처분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을 우리는 정부가 보유한 한국통신 지분을 국민연금에 매각해 발생한 폐해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또 코스닥에 상장된 벤처기업의 주가가 심각한 거품상태에 있을 때에도 벤처기업이 한국경제를 구원할 구세주라고 치켜세우며 투자를 장려하던 정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주식시장에 대한 정부의 판단 능력을 지켜본 바 있다.
연금은 우리의 노후를 위한 귀중한 자산이다. 연기금의 운용 목표는 가입자나 사용자의 미래의 구매력을 보전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하며, 이를 위해 보수적으로 운용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연기금이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에 놀아날 공산이 엄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무리한 운용 목표수익률이 책정돼 투기적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처럼 주식투자 위험이 큰 시장에서, 투자결과를 책임질 리가 없는 정책 당국자들이 연기금의 주식투자에 대한 결정을 너무나 손쉽게 내리려고 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박경민(한가람투자자문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