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전후 유럽경제/찰스 페인스타인 외 지음 양동휴 외 옮김/303쪽 1만5000원/동서문화사
‘Only Yesterday(1929, 미국 대공황)’라는 책이 있다. 대공황이 발생하기 전 미국의 사회상과 대공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책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주식시장까지 사회의 전 부문이 망라되어 있다.
이 책은 관점을 유럽에 맞췄다. 똑같은 주제를 다뤘지만 형식은 판이하게 달라 ‘Only Yesterday’가 신문을 읽는 기분이라면, 이 책은 마음 먹고 경제사 책을 읽는 신중함을 느끼게 한다.
유럽 대공황의 단초는 1차 대전이 제공했다. 전쟁 수행과정에서 나타난 재정적자는 전후에 개선되기보다는 경제·사회적으로 확대일로에 있었고, 유럽 각국은 과잉 통화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도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였다. 1차 대전 이전의 통화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무지의 결과였다면, 탐욕의 대표적인 예는 독일에 대한 배상금 문제였다. ‘독일놈들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보복심리에서 감당할 수 없는 배상금을 요구해 국제경제에 불안요인을 더해 주었다.
그래도 1920년대 중반까지는 안정기였다. 진짜 위기는 이후에 나타났는데 192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나타난 대공황의 첫번째 징후는 농산물 가격 하락. 밀과 사탕수수의 가격이 50% 이상 떨어졌고, 가격 하락의 영향은 농산물에서 공산품으로 확대됐다. 1차 대전을 겪으면서 향상된 노동 생산성과 전시 동안 커진 생산 능력이 결합해 생산이 수요를 월등히 초과한 것이 가격 하락의 요인이었다. 대공황의 절정은 금융기관 붕괴. 1929년에 치명적인 은행공황과 파산이 이어졌고, 31년에는 오스트리아 최대 은행의 파산과 미국과 독일의 심각한 은행공황이 발생했다.
대공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경제 블록의 강화와 블록간 연합에 맞춰졌다. 공황 초기에는 유럽국가들이 여러 개의 적대적인 연합으로 나뉘어져 독자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적대적 블록화가 가격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무역의 감소를 초래하자 영국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제한적인 협조의 틀을 갖춰갔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 틀에서 벗어나 있었고, 이 때 그들이 추구했던 군국주의와 폐쇄경제 정책이 또 다른 세계대전을 잉태했지만….
책은 출판될 때 사회상을 적절히 반영하는 것 같다. ‘Only Yesterday’의 번역본은 경기 둔화가 한창이던 1992년에 출판됐고, 대공황을 다룬 또 다른 책인 ‘The world in depression(대공황의 세계)’의 번역본도 IMF 위기가 무르익던 시기에 출판됐으니 말이다. 이 책은 최근에 출간됐다. 이번만은 심각한 경기 침체가 없었으면 한다.
이종우(대우증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