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드민턴은 ‘절름발이’였다.
역대 올림픽에서 늘 메달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돼 왔지만 언제나 세계 정상에 접근하기 쉬운 복식에서만 성적을 냈다. 그나마 여자단식은 96애틀랜타올림픽때 방수현이 금메달을 따냈으나 남자단식은 말 그대로 황무지.
이현일(21·한국체대)이 지난해 2월 스웨덴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나 5월 토마스컵 남자단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6애틀랜타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폴 라르센(덴마크)을 꺾었을 때 우연으로 치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만큼 국내 배드민턴계가 단식에 관한 한은 패배감에 젖어 있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현일은 ‘우연’을 거듭했다. 지난해 이어 열린 태국오픈에서 중국의 지싱펭(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을 2―0으로 꺾었고 12월 한중친선경기때는 자신에게 내리 두 번 이겼던 시드니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시아준제를 눌렀다. 불과 1년여 사이에 거듭한 가파른 상승세였다.
이제 그가 ‘단식 기근’에 시달렸던 한국 배드민턴계에 단비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남은 것은 언제 세계 정상 고지에 오르느냐는 것뿐.
9일부터 14일까지 지난해에 이어 다시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2001 삼성코리아오픈국제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상금만 25만달러(약 3억원)로 세계 최고액이고 종목별 세계 톱 10을 포함해 20개국 250여명이 출전해 세계선수권을 방불케 하는 대회다.
세계 랭킹 20위를 마크하고 있는 이현일이 홈에서 열리는 이 대회에서 세계 정상을 넘겨다보고 있다. 중국의 지싱펭, 시아준제는 물론 유럽 챔피언 피터 게이드(덴마크), 아시아의 ‘다크호스’ 웅충한(말레이시아), 고피찬드 푸렐라(인도) 등 톱랭커들을 상대로 대도약을 기대하고 있다. 아직 네트플레이와 수비가 약하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급성장하고 있기에 다소 성급하지만 기대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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