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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은행원 오래 하려면 중소기업대출 말라"

입력 | 2001-01-08 16:31:00


은행에서 오래 살아남으려면 가능한 한 (중소기업) 대출을 하지 말라.

1월8일, 하나은행 전임직원 앞으로 하나은행을 떠나면서… 라는 E-메일 편지가 배달됐다.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에게 덕담과 아쉬움을 남기는 통상의 고별사와는 대조적인 내용을 담은 A4용지 2장분량이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채광기(蔡光基) 전지점장(50). 며칠전까지만 해도 행내 1∼2위를 다투던 삼성역 지점장이었던 그는 지난 5일자로 이루어진 명예퇴직에서 60명중의 한사람에 끼였다.

그가 명예퇴직 대상에 포함된 것은 대출해준 중소기업중 일부가 부도 나 은행이 손실을 입었기 때문. 잠실지점장 시절이던 97∼98년에 새로 발굴해 대출해준 중소기업 몇곳이 부도를 내 은행에 십수억원의 피해를 끼쳤다. 이로 인해 그는 작년에 3800만원 가량을 개인적으로 변상했다고 한다.

채 전지점장은 사업내용은 좋지만 자금을 못 구해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은행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대출해줬다. 중소기업에 대출하다보면 부도나는 곳도 있기 마련이다. 커미션이 오가는 불법대출이 아니었는데도 문제삼는 것은 억울하다 고 밝혔다. IMF 시절 중소기업이 무너져 내리면 내 가슴 또한 무너져 내리는 아픔을 느꼈다 고도 했다.

또 은행이 중소기업 대출보다는 아파트담보대출이나 대기업 대출에 치중하는 것은 잘못된 은행의 여신 및 인사정책에 따른 것 이라고 덧붙였다.

채 전지점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사표를 내지 않으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대우그룹등 대기업에 대한 부실대출로 작년 결산에 6000억원이나 대손충당금으로 쌓는데 대해 책임지는 경영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하고 싶은 일과 꿈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은행을 떠나는 것이 슬프지만 다음 세대를 위하는 일이라면 기꺼이 의자를 물려줘야 한다 고 말했다. 조흥은행 10년, 신한은행 10년, 하나은행 10년의 30년 은행원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 명예퇴직을 하더라도 추운 겨울이 아니라 따뜻한 3∼4월에 하면 한결 부드럽지 않겠느냐 는 말을 뒤로 한채로….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