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3년 전 그렇게 많은 기대 속에 출범했던 이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졸업했다고 호언장담하던 이 정권이 추락하고 있다. 경기예고 지표들은 갈수록 악화되고 국민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고통지수는 날로 상승하고 있다. 그렇듯 자신감에 차있던 대통령마저 국무회의 석상에서 올해 경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탄식했다니 정녕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오죽하면 독재시대 회상할까▼
경제가 어렵다고 하니 별의별 소리가 다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참담하게 느껴지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경제정책과 사람들이 그립다는 수군거림이다. 그래도 명색이 민주투사들의 목숨을 건 투쟁으로 쟁취했다는 정권인데 그들의 타도 대상이었던 독재정권을 본받으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고는 하나 국민은 경제라는 거울을 통해서 정치를 만난다. 그래서 국민은 피부로 느끼는 경제를 통해 정치를 평가하게 된다. 말하자면 정치를 경제의 배후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저간의 사정을 오랜 정치경력을 통해 파악해서인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일찍이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바 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대통령에 취임하고 외환위기가 수면 아래로 잠깐 잠복한다 싶자 본래의 전공인 정치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권출범 이래 그렇게 다짐해온 4대 개혁은 변죽만 요란하게 울렸지 정작 이뤄진 것은 없는 반면 대북문제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으로까지 발전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가 남북통일을 원치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경제를 담보로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국민은 슬그머니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북문제도 돈을 안들이면 되는 것이 없다는 걸 자각하면서 대다수의 국민은 나라 살림을 걱정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감격이 결코 국가재정을 풍족하게 해주지는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경제에 대한 국민의 불안심리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가 신뢰를 회복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이 판국에 우리 정부는 공적자금이나 대북협상에 관해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있고 우리 정치는 의원임대사업이나 불법정치자금 시비 등 서로의 약점을 들춰내는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치는 자신들의 이해에 눈이 멀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국민의 불안을 감소시키기보다는 더욱 가중시키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이 그렇지 않은가. 이제 우리 국민의 정치에 대한 냉소적 시각은 노벨상 같은 낭보로도 해소되지 않는다.
정치는 항상 경제 걱정을 도맡아 하는 듯했지만 실제로는 경제를 훼손해 왔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논리는 항상 경제논리를 압도했고 결국은 국민의 호주머니를 축내 왔다. 예를 들어 4대 개혁 과제 중 정부가 우선적으로 모범을 보였어야 할 공공개혁만 해도 그렇다. 정치권에서 떨어뜨린 낙하산 인사로 개혁 대상들을 곳곳에 심어놓고 그들에게 개혁을 주도하라니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내 허물도 바로잡지 못하면서 남에게 어떻게 호령하겠는가. 이러고도 국민에게 희생과 동참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러니 툭하면 노조가 사사건건 강성대응을 하고 나서는 것이다. 국민이 아파도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은행에 맡겨 놓은 재산을 일시라도 찾지 못하는 사태가 왜 왔겠는가. 사태가 이 지경이니 그나마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경제원칙을 고수했다는 군사정권시절의 경제참모를 추모하게 되는 것이다.
▼정권욕 버리고 살림 챙겨야▼
이 시점에 정권의 레임덕은 이미 시작되었고 정치의 계절은 성큼 다가서고 있다. 벌써 대권주자라는 이들은 당권, 대권다툼에 열을 올리며 화려한 말잔치를 시작하고 있다.이제 기회는 마지막이다.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의연하게 정치를 바로 세워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역사에 남을 통치자의 길이다. 국민은 뭐 그리 대단한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게만 해주면 된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민주정권이 그래도 군사독재정권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한다.
예종석(한양대 교수 ·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