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무는 기만하지 않으므로 난 여생을 나무와 함께 살련다….1973년 3월에.’
황혼기 인생 30년을 나무를 심고 가꾸는 데만 쏟아온 독림가(篤林家) 임창봉(林昌鳳·80·대전 서구 장안동 장태산휴양림 대표)씨.
그가 28년전 써놓은 ‘나의 신조’라는 글에는 나무와 숲에 대한 철학과 애정이 그대로 배어 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에게 한 약속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요즘 자신이 가꿔온 숲을 떠나야 할 처지가 됐다.
전재산인 200억원을 투자했으나 농협 등에서 받은 정책자금을 상환하지 못한데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까지 겪게 되면서 지난해 11월 휴양림이 경매처분결정을 받았기 때문. 연 평균 10억원의 흑자를 내면서도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한 흑자도산이었다.
국내 최대 독림가로 불리는 임씨가 장태산 휴양림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은 70년초. 토건업으로 큰 돈을 벌었으나 ‘자식들에게 물려주면 집안이 망한다’는 생각에 장안동 일대 임야 23만평을 매입하는데 모두 사용했다. 난마처럼 얽힌 칡넝쿨을 걷어내며 주목(朱木)과 다 자라면 직경이 8m까지 이르는 메타세쿼이아를 정성스레 심었다. 도심생활을 꿈꾸던 큰 아들 재문씨(51)와 둘째 아들 재길씨(47)도 설득해 동참시켰다.
외부인의 출입이 시작된 것은 조림 20년만인 90년. 하늘을 찌를듯 쭉쭉 뻗은 15만그루의 나무를 처음 본 방문객들은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탄성을 질렀다.
임씨의 가장 큰 걱정은 이곳이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것.
그는 “부도소식이 알려지자 각종 사이비 종교집단이 찾아와 이곳을 기도원으로 만들려고 하는 등 산림훼손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여건만 허락한다면 이곳을 시민의 품으로 영원히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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