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극한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심해와 우주공간을 지나 무의식과 가상공간까지 헤집고 다닌다. 반대로 상상속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실제 경험치에 보다 가까운, 그래서 더욱 실감나는 현실공간을 찾아가기도 한다.
지난해 ‘퍼펙트 스톰’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얼마나 아득한 공간인지 그렸다면 ‘버티칼 리미트’(Vertical Limit)는 반대로 까마득한 수직선상에서의 처절한 사투를 그려낸다. 전자가 광장공포증으로 접근했다면 후자는 철저히 고소공포증에 호소한 셈이다.
무대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 K2.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습니다’는 광고카피가 있지만 영화속에선 늘 K2가 에베레스트보다 더 유명하다. 2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최악의 등정코스로 악명이 자자하기 때문.
영국의 억만장자 모험가 엘리엇 본(빌 팩스턴)은 이 저주받은 산에서 대형 이벤트를 준비한다. 한차례 K2등정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그는 자신 소유의 항공사에서 첫 취항한 비행기를 K2에서 맞이하겠다며 300만달러를 들여 전세계 유명 산악인들을 불러들인 것.
하지만 갑작스런 기상이변으로 본과 여성 등반가 애니(애니 튜니) 등 선발대 3명이 정상 바로 아래서 조난 당한다. 생명체가 살 수 없다는 뜻에서 수직한계점(버티칼 리미트)이라 부르는 7200m이상의 고지대에서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2시간 안팎. 24시간분의 물을 지닌 애니 일행에게 남은 수명은 36시간이다.
본의 회사에선 이들의 구조에 300만달러를 내걸고 애니의 오빠 피터(크리스 오도넬)는 전설적 등반가 몽고메리 윅(스콧 글렌) 등 다른 산악인 5명의 도움을 받아 구조에 나선다. 피터는 과거 암벽등반 중 애니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의 자일을 끊어야했던 아픈 기억이 있고 윅 역시 K2에서 아내를 잃은 상처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은 앤일행이 갖힌 얼음계곡을 폭발시키기 위해 액체상태의 폭발물, 니트로그리세린까지 짊어지고 암벽을 오른다.
영화의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 등반장면은 K2와 가장 흡사한 뉴질랜드 북쪽 쿡산에서 찍었다. 대신 배경의 대부분은 별도의 촬영팀이 4200m지점까지 진짜 등정을 감행하며 35㎜필름으로는 최초로 담아낸 실제 K2의 모습이다.
‘마스크 오브 조로’와 ‘007 골든아이’의 마틴 켐벨감독은 ‘클리프 행어’의 절벽타기로도 부족해 ‘스피드’의 시한폭탄까지 도입해 현란한 곡예를 펼쳐보인다. 하지만 영화속에 겹겹이 포개진 섬세한 드라마를 살리는 데는 아쉽게도 실패했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는 풍경에 압도당하고 구조대가 정상 가까이 다가갈수록 극적 긴장감이 처진다. 13일 개봉. 12세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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