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곡가 브람스는 서양의 대표적 주선(酒仙)이었다. 세상을 하직하는 자리에서조차 그는 마지막 술 한잔을 청한 뒤 “아, 좋다. 이렇게 고마운 세상을 떠나다니”라는 말을 남기고 취한 듯 눈을 감았다고 한다. 동양의 주선 이백(李白)은 그의 자견(自遣)이라는 시에서 술 취한 눈에 비친 세상의 고즈넉함을 보여준다. ‘술을 마시는 사이 어느덧 날이 지고, 옷자락에 수북이 낙화가 쌓였는데, 취한 걸음 시냇물의 달 밟고 돌아갈 때, 새도 사람도 없이 나 혼자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두가 그렇게 술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양인 중에는 4% 정도가, 그리고 동양인 중에는 25%가 알코올 분해 효소를 생성하는 유전자를 갖지 못한 채 태어난다. 의학적으로 그들에게 술은 독(毒)이자 고통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민주적 주법’이라는 폭탄주 문화는 주당들의 우월적 선택이자 교만으로 여겨진다. 술좌석에서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렇듯 왜곡되고 있다.
▷국세청 발표에 따르면 99년 한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출고된 술의 양은 304만1651㎘로 2홉들이 소주병에 담을 경우 무려 84억4900만병에 이른다. 신생아까지 통틀어 계산해도 한해 술 소비량이 1인당 180병, 음주 인구(64.6%)만 따지면 278병에 달한다는 통계는 믿어지질 않아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야만 했다. 이렇게 엽기적으로 술을 마셔대는 나라에서 간질환이 40대의 사망원인 1위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다는 통계는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술 문화 때문에 작년 한 해 여러 사람이 망신했다. 5·18추모행사에 참석한 386세대 국회의원들의 술판이 비난의 대상이 됐었고 폭탄주에 취한 환경부의 고위 공직자는 여성장관을 비하하는 발언 끝에 자리를 물러나야만 했다. 옮기기조차 민망할 정도의 취중 실언을 한 외교통상부장관은 가당찮은 국익의 명분으로 비판의 화살을 겨우 모면했다. 옛날 스파르타인들이 노예들을 만취시킨 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교훈을 얻었던 것처럼 우리도 공인들의 추태를 통해 반면교사적 주도를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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