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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엘리트]미국 HP 사장 피오리나

입력 | 2001-01-09 18:35:00


‘미국 초우량 30대 기업의 최고경영자에 오른 최초의 여성’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디지털시대의 리더’ ‘인터넷 르네상스를 이끌어갈 기업인’….

칼튼 S 피오리나. 미국 휴렛팩커드(HP)사의 최고경영자(CEO) 겸 사장은 지난해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쏟아진 찬사는 현직의 위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의 명성은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이다. 피오리나는 HP가 63년 역사상 처음 CEO를 외부영입키로 작심하기 전부터 주목을 끌었다. 그가 보인 경영성과는 전 직장에서는 ‘신화’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는 직장생활을 타자 치는 평범한 여비서로 출발했다. 그러나 특유의 추진력과 탁월한 판단능력을 바탕삼아 세계 최고의 CEO로 발돋움했다. 그는 작년 출신교인 MIT 졸업식에서 “인생은 고비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기나긴 여행”이라고 회고했다.

▼AT&T 기업공개때 실력 발휘▼

피오리나는 20년간 세계 최대의 통신사업자인 AT&T 한 곳에서 경력을 쌓아왔다. 특히 96년 AT&T가 루슨트테크놀로지를 스핀오프(Spin―off)할 때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기획능력과 추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이 프로젝트는 미국 경제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공개(IPO)로 평가됐다. 루슨트테크놀로지로 자리를 옮겨서는 매출액 200억달러 규모의 글로벌서비스 부문을 총괄했고 모든 지역, 모든 상품에서 성장을 이끌어내는 신화를 창조했다.

그는 99년 HP로 입성하면서 가장 먼저 인터넷 네트워크 개념의 대변혁을 주창했다. 컴퓨터와 프린터 제조업체인 HP를 ‘종합 인터넷 기업’으로 변신시키기 위한 ‘밑그림’을 그린 것. 그러나 인터넷의 변혁을 누구보다 앞서 진단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피오리나는 작년11월 열린 컴덱스(COMDEX)의 기조연설에서 “닷컴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닷넷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세계가 ‘닷컴 위기론’으로 침울해 있을 때 ‘닷넷’이라는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한 것이다. 피오리나는 미래의 네트워크는 PC뿐만 아니라 모든 가전제품을 연결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리더로서 그녀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피오리나는 “디지털 시대에는 리더십과 경영방식이 모두 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리더십은 일방적인 통제에 그쳐서는 안되며 조직원들이 능력과 의지를 갖추도록 ‘알맞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 어느 정도 경계선만을 설정할 뿐 그 안에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참다운 리더십이라고 그는 갈파하고 있다.

▼디지털시대 리더로 영향력 막강▼

그는 또한 디지털기술이 ‘제2의 르네상스’를 창조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차갑고 기계적인’ 디지털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수단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피오리나가 전공한 중세사의 막바지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중세의 특징인 ‘절대성’과 ‘불변성’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며 영국의 부흥을 이끈 인물. 셰익스피어와 스펜서 등 대문호는 엘리자베스 1세의 집권 후반기에 영국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디지털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피오리나가 ‘위대한 CEO’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1세의 후신(後身)으로 ‘부활’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피오리나와 한국-작년 6월 극비 방한…인터넷 발전에 관심▼

피오리나 회장은 한국과 10년 전부터 인연을 갖고 있다. 90년 금성사(현재 LG)와 미국 AT&T가 합작 설립한 금성정보통신의 전략기획 담당 이사로 직접 참여한 것. 한국에 체류하지는 않았지만 피오리나는 이사회 참석을 위해 94년 초까지 매년 한 두 차례 방한했다. 당시 금성정보통신의 공동대표였던 양춘경 루슨트테크놀로지코리아 사장은 “칼리(애칭) 피오리나는 매우 활기찬 여성이었다”고 회고했다. 양사장은 특히 “피오리나가 ‘파트너십’에 대해 브리핑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면서 “파트너는 협력할 부분에서는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해 두고두고 경영에 참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오리나는 휴렛팩커드(HP)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이후 두 차례 방한했다. 99년 10월 공식방한 때는 강연을 통해 “디지털 경제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과감한 체질개선이 절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앞으로 수년간은 인터넷 환경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면서 인터넷 비즈니스의 새로운 모델이 잇따라 탄생할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작년 6월에는 비공개리에 하룻밤 한국을 찾았다.

피오리나는 한국을 포함, 아시아지역의 인터넷 발전에 주목하고 있다. 그녀는 “98년까지만 해도 북미지역에 집중되었던 인터넷 이용인구가 전세계 여타지역으로 확대되는 추세”라면서 “2002년이면 북미지역 인터넷 이용인구의 비중은 33%선에 그치고 유럽(30%)에 이어 아시아(22%) 지역이 주축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피오리나는 하루에 400여통의 E메일을 받고 있지만 거의 대부분 비서가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명의 수양딸을 두고 있으며 세 살짜리 손자가 있는 할머니이기도 하다.

moo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