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세상을 사는 여성의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게다가 그 여성이 미모에 다양한 재주까지 겸비했다면 더욱 그렇다.
지난해 스키 데몬스트레이터 선발전에서 여성부 1위를 차지한 이은아씨(26·연세대 경영대학원).
연세대 교육과학대학 체육교육과를 단과대학 수석으로 입학, 졸업했고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를 지낸 그는 현재 한국 구치 시계의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재원.
‘미래는 자신의 꿈을 믿는 자에게 있다’는 좌우명 아래 재즈댄싱, 스노우보딩, 인라인 스케이팅, 독서 등 다양한 스포츠와 취미를 즐기고 있는 그의 짧지만 당당한 세상살이를 훔쳐본다.
▽그거 하면 허벅지만 굵어져!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만능 스포츠맨. 복싱과 기계체조를 했고 다이빙으로 전국체전에 나가기도 했다. 대학에선 산악부 활동을 했다. 아버지에 이끌려 다섯살때 스키에 입문했는데 초등학교때 우연히 스키대회에 나갔다가 입상하면서 재능을 발견하게 됐다.
그러나 이런 아버지도 딸이 선수가 되겠다고 하니까 극구 말렸다. 그러나 그의 고집을 말릴 장사가 어디 있으랴. 고등학교 2학년때 상비군으로 선발됐고 대학 1학년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어른도 홍역에 걸리나요?
당찬 걸음과 또박또박한 말솜씨. 누구를 만나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그의 고집은 어릴 적부터 유명했다. 대학 1학년 겨울. 용평에서 대회를 끝내고 이동하기 전 체온이 섭씨 39도까지 올라가 병원에 들렀다. 진단 결과는 장티푸스. 너무 열이 높아 X레이를 찍다가 기절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소아과 의사가 성인성 홍역이라고 했다. 결국 얼마 안 있다가 대표를 그만 뒀다.
▽‘춤바람’이 났어요
졸업후 그의 첫 직장은 유나이티드 항공사 사무직. 평범함을 싫어하는 그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취미삼아 시작한 재즈댄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밥도 먹지 않고 이것만 하고 싶었단다.
휴가때마다 친지가 있는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가서 수업을 받았다. 6개월여의 노력 끝에 정식 입학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게 웬 날벼락인가. 사표를 내자마자 일주일만에 다리 골절상을 당했고 8주간의 깁스에 이은 척추 디스크 진단이 나왔다.
▽다시 스키로!
두 번째 직장인 지금의 우폰물산에 입사했다. 자주 시간을 낼 수 없었기에 그 어느 해보다 생각을 많이 하면서 스키를 탔다.
눈이 전해주는 느낌과 자신이 눈에 전하는 느낌이 일체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 시절의 공격적인 스타일에서 부드러움을 가미하려는 노력도 계속했다. 마침내 스키가 내 몸의 일부가 됐다.
99년 처음으로 데몬스트레이터에 선발된 이은아씨는 멋진 실력과 미모를 갖춘 덕분에 매주 토요일 오전 6시50분 MBC TV 스포츠뉴스에서 ‘스키강좌’를 진행하며 브라운관의 스타로도 떠오르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는 my.netian.com/∼euna1.
데몬스트레이터란?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 출신의 이은아씨가 데몬스트레이터가 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뭘 모르는 사람이다.
데몬스트레이터는 스키 기술에 관한 한 알파인 선수를 능가하는 테크니션이다. 대한스키협회 산하 스키지도자연맹(www.ksif.org)에서 주관해 93년부터 매년 남자 10명, 여자 3명을 뽑아 왔다. 국내에서 단 한번이라도 데몬스트레이터의 칭호를 얻은 사람은 40명 안팎에 불과하다. 알파인 국가대표로 뽑히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말이 여기서 비롯됐다.
데몬스트레이터가 일반인을 상대로 강습을 하는 일은 드물다. 해외의 최첨단 스키 기술을 들여와 각 스키장의 강사를 상대로 신기술을 전파하는 것이 이들의 주 임무.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알파인 선수의 은퇴후 목표가 데몬스트레이터인 경우가 많다. 4년에 한번씩 인터스키대회란 데몬스트레이터의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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