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출판이 일반화되면서 출판계에서 필름 출력이란 인쇄방식이 쓰인 지가 꽤 오래 되었다. 보통 컬러 인쇄에는 1쪽에 모두 4장의 필름을 쓰는데, 적, 녹, 황, 먹의 필름을 겹쳐 모든 색을 만든다.
컬러로 인쇄된 책은 주의해서 골라야 한다. 때로는 4장의 필름이 잘못 물려 색이 번지는 경우도 있고 허술한 명화집 같은 책에는 엉뚱한 색이 나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색이 생명과도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잘못된 색으로 감상한다면 억울한 일이 될 것이다.
고급 아트지에 선명한 색이 돋보이는 인도여행기 한 권이 출간되었다. 슬픈 인도.(북하우스) 앞서 말한 총천연색 인쇄로 평가하자면 이 책은 잘 만들어진 축에 속한다. 번진 데도 없고 색도 좋은 편이라 우선 눈이 따뜻해진다.
이 책은 인도를 방랑하며 씌어진 방랑기이자 사진첩이다. 하지만 기행문인 동시에 어딘가 낯설지 않은 변증법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왜냐하면 이 책이 가족의 가치를 인도에 비유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의심이 많다. 의심 많은 합리주의자들은 대상을 증오하는 데서 사고를 시작한다. 저자는 인도를 아름답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인도는 서로의 허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상처주기 쉬운 가족과도 같다.
“인도는 한적한 여백의 삶이 그리워 찾아온 사람을 푸근하게 맞아주지만, 또한 그 땅에서 벌어지는 삶의 고통과 치열함은 그를 한없이 빈둥거리지 못하도록 한다.”
저자에게 인도의 첫인상은 지저분하고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인도는 지저분하고 비합리적인 게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나라다.
인도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은 악착같이 매달리는 걸인과 상인의 시달림을 받게 마련이지만, 결국 합리적인 나라로 돌아가서는 비합리적인 인도인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가족이 지겨워져서 떠난 여행에서 곧 집이 그리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원심력을 가족의 변증이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 그게 무엇이든 ‘가족’과 연관돼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즐겁다.
저자 이지상 씨는 1985년 직장을 그만둔 후 1988년부터 줄곧 여행과 글을 벗삼아 살아오고 있다.
안병률/ 동아닷컴 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