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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택칼럼]DJP가 식사전에 했어야 할 일

입력 | 2001-01-10 18:33:00


김대중(金大中·DJ)대통령은 오늘 기자회견을 갖고 국정쇄신책을 밝힌다고 한다. 무슨 얘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우리 주위가 모두 어둡기만 하니 이 어둠을 물리칠 희망의 빛이 청와대로부터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회견 하루 전날 나온 뉴스가 민주당 의원 한 명을 또 자민련에 꿔주기로 했다는 것이고 보면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새해, 그것도 진짜 21세기가 시작된다는 새해를 맞으면서 국민 개개인과 나라에는 꿈과 희망이 가득해야겠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 대신 냉소와 자조, 실망과 허무감이 만연하고 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뻔뻔스러운 거짓말, 국민을 우습게 보는 오만함, 민의(民意)를 저버린 독선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김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JP)자민련명예총재가 다시 협조를 다짐했다는 이른바 ‘DJP공조’, 경제재도약과 민생안정을 위한 것이라 한다. 두 분은 청와대 만찬회동에서 농어구이와 안심스테이크를 들며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공조를 약속했다고 한다. 민생안정도 좋고 경제재도약도 좋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 국민과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두 분이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좋은 음식을 먹기에 앞서 국민을 향한 속죄의 기도부터 했어야 마땅하다.

민주당과 자민련 공조의 고리가 된 내각제 약속도 애당초 되지 않을 것인데도 공약이라고 내건 것이지만 공약을 깨면서 유권자들에게 사과다운 사과도 없이 어물쩍 넘어갔다. 그건 이미 오래 전 일이니 그렇다 치자. 작년 4·13총선을 앞두고 쏟아낸 JP를 비롯한 자민련 수뇌부의 몇 가지 말은 너무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앞으로 자민련의 사전엔 공동정부란 말은 영구히 없다.’

‘우리는 한 번 속지 두 번 속지 않는다.’

그러나 총선이 끝난 후 자민련은 어떻게 했나. 우리가 언제 그런 말을 했느냐는 듯이 입을 싹 씻고 총리자리도 차지하고 이것저것 실리도 챙겼다. 절대 공조 안하겠다는 말을 믿고 표를 찍어준 유권자들에게 그들은 어떻게 사과했나.

유권자를 찾아다니며 백배사죄해야 할 사람들이 “그때는 화가 나서 그랬다”느니 하면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른바 선진국의 정치인은 거짓말한 게 들통나면 정치생명이 끝장이라고들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다. 약속 안지키고 거짓말 잘하는 사람이 더 잘되는 세상이다. 이렇게 뻔뻔스러운 정치인과 아무 거리낌없이 손잡아 이룬 DJP공조의 도덕적 기반은 무엇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정치지도자의 의식이 이런 정도라면 국회의원 몇 명을 꿔주고 꿔받고 하면서도 이것을 ‘넓은 의미의 정도(正道)’라는 김대통령의 주장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세 의원 꿔주기에 대한 비판이 민주당 밖은 물론 당내에서도 터져 나오는데 또 꿔주기를 하는 그 강심장도 이상할 게 없다.

앞서 간 세 의원은 당 지도부와 관련 없는 독자적인 행동, ‘소신’에 의한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32년 전에도 ‘소신’에 따른 독자적 행동을 했다고 주장해 뉴스의 초점이 됐던 세 의원이 있었다. 69년 박정희(朴正熙)정권의 3선개헌에 야당인 신민당(新民黨)의원 신분으로 지지성명을 발표했던 성(成), 조(曺), 그리고 연(延)모씨. 당시 그들 뒤에는 장기집권음모를 꾸미던 막강한 공화당정권과 중앙정보부가 있었다는 것을 국민은 안다. 32년이 지난 지금도 국민은 안다. 임대의원 뒤에 누가 있는지를. 임대의원의 소신과 강창희(姜昌熙)의원의 소신이 어떻게 다른지도 안다.

국민은 겉으로는 모르는 듯해도 속으로는 모든 것을 아는데 정치지도자들은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으니 정치불안은 심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유권자들이 표로 나타낸 민의를 하늘처럼 알고 정치를 해야 하는데도 이를 자신의 정략에 따라 거스르는 데서 국민과의 불화는 시작된다. 이 불화의 끝이 어떤지는 역사가 말해준다.

euh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