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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현대' 앞에 서면 작아지는 정부

입력 | 2001-01-10 18:56:00


정몽헌(鄭夢憲)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이 산 넘어 산이다. 한 계열사가 한국 경제를 볼모로 잡고 특혜성 지원을 받아 간신히 위기를 모면하고 나면 다른 계열사에서 새로운 위기가 터져 나온다. 이 정부는 이해가 안될 정도로 현대그룹에 끌려 다니며 시장의 의구심을 키우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

이번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회사채를 인수해주기로 한 6개 기업 중 4개가 현대전자 현대건설 현대상선 고려산업개발 등 현대 계열사이다. 다른 2개의 기업은 구색 갖추기로 들어간 형국이어서 누가 보더라도 ‘현대그룹 봐주기’라는 말이 나오게 돼 있다.

국책은행의 변칙적인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 제도는 시장 원리에도 맞지 않고 구조조정의 원칙도 퇴색시킨다. 기업 스스로 최대한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기도 전에 서둘러 산업은행의 지원대책을 내놓는 바람에 현대전자는 가산금리를 더 깎고 만기도 늘려달라며 자체 부담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판이다.

정부가 이래 놓고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구조조정을 하라고 엄포를 놓으니 형평성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산은의 지원대책에 대해 경쟁업체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 통상 문제로도 비화될 조짐이다.

반도체 값이 폭락해 현대전자의 주력제품인 64메가D램은 현물시장에서 생산원가에 못미치는 2.5달러까지 떨어져 수익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총부채는 11조5000억원대에 이르러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자금만 4조3000억원에 이른다. 현대전자는 한국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이러한 처지를 이용해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아내기 위한 벼랑끝 협상을 하고 있는 꼴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이익을 내는 기업은 계열에서 떨어져 나갔고 정몽헌 회장이 소유한 현대건설 현대아산 현대전자 등은 모두 유동성이 불안하다. 현대건설의 자금난도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하는 현대아산은 돈만 빨아들이고 이익을 못내는 하마와 같다. 정부는 이런 현대그룹에 무작정 끌려 다니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부실 계열사를 총괄 정리하는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대우 사태의 교훈을 보더라도 충격이 두려워 부실기업 처리를 늦출수록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스스로 획기적인 자구 의지를 보여주거나 시장 원리에 따라 국내외 매각 등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