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 전 내가 한참 영어공부에 푹 빠져 있을 때 얘기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책상에 앉아서는 물론이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중얼중얼, 길을 걸어가면서도 중얼중얼, 심지어는 화장실에 매달아놓은 사전을 아무 곳이나 펼쳐들고 읽다가, 모르는 단어나 용법이 있으면 몽땅 외운 다음에야 나오곤 했다.
여하튼 이렇게 하루종일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문제는 잠자는 시간이었다. 깨어있을 때는 가능한 모든 시간들을 이용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부했지만 잠자는 동안만큼은 어쩌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자는 동안에도 저절로 공부가 되는, 뭐 그런 뾰족한 수가 없을까?” 하고 궁리하던 중 기막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바로 잠자면서도 테이프를 듣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면서 머리맡에 AFKN뉴스라든지 미국영화를 녹음한 것 또는 내가 만든 단어장 녹음한 것 등을 틀어놓고 잠을 잤는데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었다.
어떤 효과인가 하면 평소에 그렇게 외우려고 애를 써도 잘 되지 않던 문장이나 단어들이 마치 옛날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저절로 외워져 있다든지, 또 미국영화 테이프를 들으면서 잠이 든 날은 밤새도록 ‘리처드 버튼’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 외국 배우들과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서 칵테일 파티도 하고 데이트도 하는 그런 꿈을 ‘영어로’ 꾸기 시작한 것이다.
나중에 ‘언어교수법’을 공부하다가 알게 된 것인데, 러시아의 한 ‘초월심리학 연구소’에서 개발한 ‘수면학습’ 이론에 의하면 사람이 잠을 잘 때는 각성시보다 몇 배 또는 몇십 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학습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잠자는 동안 계속해서 학습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잠이 들락말락해서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때부터 잠이 든 직후 얼마 동안, 잠이 깨기 전 깰락말락할 때부터 잠이 깨고 난 직후 얼마간까지가 피암시성이 굉장히 높아진다고 한다. 그때 들은 정보는 잠재의식에 깊이 새겨져 마치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선명하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원리는 잠잘 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잠이 들지 않은 각성상태에서도 온몸의 긴장이 완전히 풀린 편안한 상태에서 공부를 하면 놀라울 정도의 ‘잠재의식 학습’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 원리를 이용한 외국어 학습법으로는 불가리아의 로자노프(Lozanov)박사가 창시한 ‘암시교수법’(Suggestopaedia)이 유명하다.
은은한 조명이 있는 아늑한 홀에서, 편안한 안락의자에 몸을 맡긴 채 온몸의 긴장을 풀고 충분히 긴장을 늦춘 다음 장중한 바로크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는 가운데 선생이 천천히 불러주는 단어나 문장들을 듣고 있으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잠재의식에 그대로 입력되는 방식이다. 1960년대 중반에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있었던 실험에서는 이 교수법을 사용하여 15명의 참석자 전원이 하루에 1000단어의 프랑스어를 배웠는데, 나중에 테스트해보니 97%의 정답률을 보였다고 한다. 다음호에 계속.
(주간동아 제2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