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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재홍/박정희와 김대중

입력 | 2001-01-11 18:18:00


10일 발행된 일본의 권위 있는 시사월간지 문예춘추는 박정희(朴正熙)정권이 1973년 10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당시 일본 총리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고 폭로해 주목을 끌고 있다. 다나카의 측근 정치인이던 기무라 히로야스(木村博保)는 이 월간지에 실린 기고문에서 이병희(李秉禧) 당시 무임소장관이 찾아와 다나카에게 박 대통령의 친서와 함께 4억엔 정도로 추산되는 돈 뭉치를 전했다고 밝혔다. 73년8월 도쿄(東京)에서 김대중(金大中·DJ)납치사건이 터진 후 일본 정부의 불쾌감을 달래기 위한 공작이 있었으리라는 추측을 사실로 입증할 만한 증언인 것 같다.

▷DJ납치사건을 중앙정보부가 자행했다는 것은 이제 거의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런 불법 행위가 일본 영토 내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진상을 가려낼 권한과 함께 책임이 일본정부에 있었다. 일본으로서는 남의 나라 정보기관에 의해 주권 침해를 당한 꼴이었다. 또 이웃나라 야당 정치인이 납치 당한 인권유린 사건에 대해 진상규명하는 일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체통을 지키기 위해서도 중요했다. 그런데도 납치의 주범과 배후가 누구며 범죄 목적은 무엇이었는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영구미제로 남아있다.

▷이병희씨는 김종필(金鍾泌·JP)자민련 명예총재와 육사8기 동기생으로 JP가 중앙정보부를 창설할 때부터 함께 일했으며 사건 당시는 JP가 총리인 내각의 각료였다. 그가 건넨 뭉칫돈 속에는 오히라(大平) 당시 외상의 몫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측의 엄정한 수사를 막는 한편 중앙정보부의 불법 무례로 기분이 상한 데 대한 ‘위자료’ 성격의 돈을 일본 정계의 실력자들에게 뿌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기무라 증언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중요한 단초를 제공했으며 그런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보공작 정치가 횡행하던 시절 피랍사건의 피해자인 DJ는 오늘날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룩한 대통령이지만 자신을 핍박한 정권의 후계 세력인 JP와 손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민주화 동지들이 그렇게도 반대하는 박정희 기념관건립에 국민 혈세를 배정해 가며 적극 나서는 것 또한 ‘박정희와 DJ’역사의 아이러니를 실감하게 한다.

nieman9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