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은 한국경제와 질긴 악연을 맺고 있다. 72년의 ‘8·3 사채동결조치’를 비롯해 80, 90년대 수차례 이루어진 산업합리화와 기업부채탕감, 국제통화기금(IMF)지원 등 10년 주기로 ‘이름만 다른 공적자금’이 동원돼 연쇄도산위기를 넘겼다.
21세기를 맞은 오늘까지 한국경제는 부실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공적자금에 목을 매고 있다. 1, 2차로 나뉘어 160조원이 투입되고 있으나 산업은행이 기업 회사채를 대신 사줘야 할 정도로 금융시스템은 마비됐다. 국민과 후손에게 부담을 지우는 공적자금의 멍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밑빠진 독' 공적자금 시리즈 ▼
- 국책은행이 나랏돈 주는 꼴
- 부실은행 공적자금 물쓰듯
- 부실기업 "흥청망청"…돈이 샌다
- "망하면 물어주지" 아무데나 선심
- '옥석' 제대로 가려 지원해야
▽공적자금 상습화를 막아야〓서강대 조윤제(趙潤濟)교수는 “신용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긴급처방인 공적자금이 상습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없애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공적자금이 새지 않도록 하려면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기관에 대해 철저한 자구노력을 담은 이행각서를 제출토록 하고 추진실적을 엄격하게 점검해야 한다는 것.
한화증권 진영욱(陳永旭)사장은 “금융구조조정과 공적자금의 투입목적을 클린뱅크화로 잡아야 하며 대형화는 그 이후에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우량은행을 무리하게 합병시키려 한다든가, 부실은행을 자산부채계약이전(P&A)방식으로 정리하지 않고 금융지주회사로 묶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 지주회사란 은행 보험 증권 등 다른 업종의 금융기관을 묶어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인 만큼 지주회사 편입은행들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설명이다.
▽기업금융 회생〓성신여대 강석훈(姜錫勳)교수는 “제도적인 하드웨어 정비는 어느 정도 일단락 된 만큼 마비상태에 빠진 기업금융을 회복시키는 일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은행의 대출심사능력을 높여 부실채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행장을 포함한 임직원의 책임문제도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라면 묻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스템이 잘못돼 있는데도 은행장이나 행원에게 책임을 물으면 복지부동만 확산시킨다는 것.
▽퇴출기준이 명확해야〓삼성경제연구소 유용주 수석연구원은 “정부와 채권금융기관이 부실기업을 그때그때 퇴출시키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어떤 기업을 퇴출시킬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판단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워크아웃이 실패한 것도 회생가능성이 있는 기업과 없는 기업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부실대기업의 회사채를 일률적으로 산업은행이 인수하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이라며 “당장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을 수 있는 기업은 고금리라도 자금을 지원하되 그렇지 못한 기업은 매각이나 합병 등을 통해 정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삼성증권 이남우(李南雨)상무는 “전체 회사채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BBB이하가 거의 거래되지 않고 있는 것은 부실기업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선 어떻게▼
미국이나 유럽은 오래 전부터 ‘부실은행은 문닫는다’는 원칙 아래 예금보험공사가 평소에 예금의 일부를 떼어내 기금으로 마련해 두고 있다.
예보는 채권회수에 특별히 신경을 쓴다. 우리처럼 20조원 예금대지급을 한 예보가 30%는 회수가능하다는 식의 거품은 없다.
스웨덴은 91년 위기가 발생한 뒤 3년반 만인 95년 초 부실채권을 모두 팔아치웠다. 빨리 팔다보니 다소 손해도 봤지만 금융시장이 정부의 신속한 처리방식에 신뢰를 줘 가산금리 하락 등으로 이익을 충분히 봤다. 특히 소송을 통해 부실금융기관 경영진에게 철저히 돈을 받아낸다. 액수는 미미하지만 메시지는 분명히 전달하는 방식이다. 형사처벌도 많았다. 스웨덴은 부실화한 노르드은행을 공적자금으로 국유화했고 후일 지분 57%만 팔고도 투입한 돈을 모두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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