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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25시]차라리 '낙하산 총재' 였으면…

입력 | 2001-01-12 18:39:00


커미셔너의 사전적 의미는 ‘전권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실제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커미셔너가 직권중재의 절대권한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98년 7월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주인 버드 셀리그가 대행 꼬리표를 떼고 9대 커미셔너가 되면서 사정은 바뀐다. 셀리그는 92년 구단주 진영의 선봉에 서서 8대 커미셔너인 페이 빈센트 주니어를 중도퇴진시켰던 장본인. 6대 커미셔너인 피터 위버로스는 방송중계권료를 천문학적인 액수로 올려 적자에 허덕이던 구단을 흑자로 바꾸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셀리그가 구단간 형평성 문제를 따지고 들자 5년 임기만 채운 채 물러났다.

이에 당시 일부 언론에선 “이제 우리에게 커미셔너는 없다. 단지 구단으로부터 보수를 받고 구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만이 있을 뿐”이라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공교롭게 국내에서도 5개월후인 98년 12월 두산 구단주 출신의 박용오씨가 12대 총재로 취임했다.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상 첫 ‘민선총재의 반란’을 성공시킨 박총재는 이 때만 해도 야구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우려했던 대로 특정 구단주 출신 총재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산이 지명권을 갖고 있던 영구제명선수 강혁은 복권됐지만 프로야구의 균형발전을 꾀하는 전면 드래프트는 무려 5개구단이 찬성했지만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취임 1년만에 터진 ‘선수협 파문’에 이르러선 박총재는 다시 구단주가 된 느낌이다. ‘선수단체가 생기면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무분별한 발언에서부터 해외전지훈련과 선수활동기간이 시작되는 ‘2월 대란’을 앞두고 14일 두산그룹 일로 보름간 외유를 떠나기까지 그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구단의 입장을 대변했다.

차라리 예전처럼 구단과는 무관한 ‘낙하산 총재’가 있었으면 미약하나마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서글픈 생각까지 드는 것은 왜일까.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