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된 지 14일 이전의 인간 배아에 대한 연구실험에 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관련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배아는 신성한 생명체임을 강조하면서 인간배아를 실험대상으로 허용하는 것은 인간성 말살과 황폐화를 초래한다는 견해이다. 이에 대해 찬성론자들은 과학의 진보와 그 적용은 불가피하며 오남용을 막을 장치가 마련된다면 의학의 발달과 불치병 치료 등을 위해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찬성/불치병 치료위한 획기적 방법▼
이제호(성균관대 의대 교수·산부인과)
배아세포에서 분리한 줄기세포의 공급과 그 활용은 막을 수 없는 과학기술의 진보다. 물론 인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아직 혼란스럽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할 사안이기는 하다.
이런 논의가 이뤄지게 된 것은 생명공학의 잇따른 결실에 따른 것이다. 특히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생명 창조의 기술이 과학자들의 손으로 넘어오면서 난치병으로 치부됐던 여러 질병의 치료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는 암이나 순환기 질환 치료는 물론 장기이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나, 부분적으로 손상된 몸의 일부를 줄기세포 배양을 통해 원하는 조직과 기관을 만들어 대체할 수도 있게 된 것들은 그 사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광범위한 의학적 활용가치가 있는 줄기세포들을 어디서 구하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성인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체세포에서 유전자 재프로그램이라는 기법을 이용하거나 골수세포에서 채취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활용가치나 잠재력은 현재 존재하는 기술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결국은 수정란을 배양해 얻는 것이 최선이다.
인간배아 연구는 무조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수정란은 곧 생명이기 때문에 어떤 조작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정자나 난자도 조작할 수 없는 것이며 많은 사람이 불임의 고통 속에서 지내야 한다. 또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무슨 권리로 죽일 수 있는가? 극단적 주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수정된 이후 14일 이전의 배아에 대해서는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수정 후 14일이 인간배아 연구 여부의 ‘절대적’ 기준이 될 수는 없다. 14일 이전에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때까지는 세포덩이에서 조직이 만들어지기 전이며 의식이 없으므로 ‘사람’이라고 보기엔 곤란하다.
물론 인간배아 연구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난다거나 상업적 지상주의로 흐를 가능성은 차단해야 한다. 과학이 상업화로 흐르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 같은 선진사회에서도 시험관아기 클리닉 등에서 흔히 일어나는 문제로, 배아 줄기세포 사업에서도 마찬가지로 예상되는 과제다.
이런 연구를 본격화하기 전에 과학자나 병원 또는 생명공학회사 등 관련 기관들이 지켜야 할 규범을 엄격히 명시하고 철저히 감시하면 된다. 특히 치밀한 처벌 규정을 담은 관련 법규와 윤리헌장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완벽하게 마련한 뒤 과학의 혜택이 선용되는 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생명과학의 시대인 21세기를 맞아 무조건 인간배아 연구를 금지하면 생명공학 후진국이 되고 난치병 환자의 치료 기회를 박탈할 수도 있다.
▼반대/수정란도 보호해야 할 생명체▼
박상은(성남중앙병원 내과과장)
인간배아 복제에 있어서 논란의 초점은 배아가 과연 인간생명이냐는 점일 것이다. 생명은 시작도 끝도 모호한 추상적 현상인가, 정확한 시작과 끝을 가진 실존적 현상인가. 생명이 시작되는 시점을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과학자들은 모든 과정을 단계로 나누길 좋아한다. 분만 이후의 삶의 여정을 신생아 영아 유아 소아 청소년 청년 중년 장년 노년 등으로 나누며 태어나기 이전도 수정란 전배아 배아 태아 등으로 나눈다. 이들 개념에는 나름대로 구분될 만한 징후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단계마다 혁명적인 변화가 있어서 그 이전과 이후에 확연하게 구별되는 경계선이라도 있으리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런 어휘의 속임수에 일반인뿐만 아니라 과학자 스스로도 속아넘어가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인간생명에는 수정되는 순간부터 임종 때까지 어느 한 순간도 전후를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조금씩 변화 성숙하는 연속선상의 생명현상일 뿐이다. 수정 이후 어떤 시점도 연속되는 생명현상을 구분할 경계점이 될 수 없음은 공인된 과학적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수정 후 14일’이라는 시점이 생명현상을 가르는 기준으로 대두된 근본적 배경은 무엇인가. 배아인간을 실험에 사용하려는 과학자들의 요구와 이를 공리주의적으로 이용하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만들어낸 난센스에 다름 아니다.
‘14일 논쟁’에 자주 등장하는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과연 어떤 의미에서 인간생명과 생명이 아님을 구분하는 경계가 될 수 있는가. 만일 원시선이 인간생명 유무를 판별하는 핵심적 결정적 기관이라면, 원시선의 출현시점은 개체마다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14일로 규정해 일률적으로 생명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어떤 배아는 수정 후 12일에 원시선이 생기기도 하고, 어떤 배아는 16일에 출현하기도 한다. 생명시점은 개체에 따라 독립적으로 평가돼야 하는 이유다.
만약 원시선이 생명의 시작으로서 근원적 의미가 있는 시점이라는 데 모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시간제한으로 생명시점을 규정해서는 안되고 각 개체에 원시선이 나타나는 시점을 확인해 개별적으로 규정해야 할 것이다. 일방적으로 14일이라고 규정하면 그 이전에 원시선이 나타난 배아는 인간생명임에도 불구하고 무참히 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태아의 발생과정을 잘 알고 있을 법한 과학자들에 의해 이런 논리가 주장되는 것이 가슴 아프다. 수정란은 이미 46개의 인간의 염색체를 갖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세포에 불과하지만 독특하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이며 완전한 개체다. 이 수정란에 영양분과 산소만 공급되면 성장발육해 성인으로 자라난다. 수정 이후의 모든 배아는 잠재력을 가진 인간생명으로 존중되고 보호돼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