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을 갖춰서 제사를 지내는데 보통 50만원은 듭니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차려야 할까요? 먹지도 않고 대부분 버립니다. 예전에 가난하던 시절에야 제사를 핑계로 서로 나눠먹는 기쁨이 있었지만 요즘은 다르지요. 더구나 종교 문제도 있고 해서 제사 음식을 함부로 돌릴 수도 없지요. 차 한 잔만 있으면 됩니다.”
10년 넘게 전국 곳곳의 종가를 돌아다니며 천년의 삶을 이어온 전통문화를 책으로 엮어 낸 주인공이 하는 말로는 의외의 이야기다.
차(茶) 문화를 비롯한 전통문화의 보급을 위해 활동해 온 저자는 ‘한배달 우리차문화원장’ ‘성균관 여성유도회 중앙위원’이란 직함도 갖고 있다.
그는 강릉의 전주 이씨, 안동 하회마을의 풍산 류씨, 경주 양동마을의 월성 손씨, 해남 연동마을의 해남 윤씨 등 전국 17개 가문의 종가를 답사하며 우리의 전통 문화가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복잡한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에 예에 관한 대표적 교과서였던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에도 제사 음식은 그냥 차와 과일 한 접시만 있으면 된다고 했어요. 이 정도라면 젊은 사람들도 제사를 꺼릴 이유가 없지요.”
연휴에 놀러 가서도 그 곳에서 차 한 잔 모셔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즐겁게 놀다 오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자신을 존재하게 한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세를 잊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제사를 기피하는 중요한 이유가 음식 준비의 번거로움과 연휴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고 보면, 저자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셈이다.
“파평 윤씨 종가를 보면 양력에 따라 제사를 지내요. 제사 음식도 다섯 가지 정도로 아주 간단하지요. 풍산 류씨는 음력 9월9일에 제사를 모십니다. 그 즈음이 돼야 햇곡식과 햇과일을 조상에게 올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제례도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하는 겁니다.”종가의 생활, 그 중에서도 제사에는 제례를 비롯해 복식문화 그릇문화 등 많은 전통이 보존돼 있지만 이 전통은 박제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삶과 함께 끊임없이 변해왔다고 설명한다.
설문에만 평균 7시간이나 걸리는 400여 가지 항목의 설문지를 들고 전국을 돌며 ‘살아 있는 전통문화’를 정리해 세상에 알리고 있는 저자는 최근 서울 근교에서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종가를 찾아냈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312쪽 1만8000원. 15일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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