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사계절’은 편하게 듣을 수 있는 음악이다. ‘따뜻한 난롯가,/사람들 포근히 쉬는 사이/만물은 겨울비에 젖어든다’ 열두 편의 소네트 (짧은 시)에 맞춰 비발디는 가장 개인적인 감상들을 각각 자그마한 음의 시로 표현했다.
정경화가 처음 내놓은 ‘사계절’ 음반(사진·EMI·발매)은 편하게 듣는 앨범이다. “유학을 떠났을 때, 한국의 시골 풍경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어요. 겨울엔 손발이 얼고 여름은 장마에다 무척 더웠지만…. ‘사계절’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악장마다 한국의 사계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죠.”
날렵하기로 이름난 신진기예들의 ‘사계절’도, 명인기를 과시하고픈 욕심에 어딘가 경직되거나 반주악단과 삐걱대는 묘한 틈새를 보이기 일쑤다. 정경화는 아예 반주까지 완벽히 장악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휘자 없는 실내악단 ‘세인트 누가 체임버 앙상블’을 기용해 철저히 자신의 주장과 해석, 빠르기와 액센트 대로 반주부를 연습시켰다.
“비발디가 100편이 넘는 오페라를 썼다는 건 잘 모르셨죠. 이 곡에서 독주 바이올린은 마치 오페라의 프리마돈나처럼 노래하고 있어요.” 그는 ‘사운드’에 중시하는 현대의 경향에 반해 ‘멜로디’가 넘치는 사계절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트랙 여기저기서 그는 잠시 쉬듯 활을 지긋이 눌러주고, 절(節)의 마지막 박자에서 숨을 죽이고, 자유로운 노래를 펼쳐낸다. 바로크이면서 낭만주의적인 사계절이다. 그러면서 방약무인하지 않고, 느긋한 즐거움이 깃들어 있다.
유독 한국에서 발매된 앨범만 두 장으로 되어있다. 정씨 자신이 해설을 붙인 ‘해설판’음반이 들어있기 때문. 60년대 초반 고국을 떠나 대부분의 시간을 미국과 유럽에서 보낸 그는 옛 흑백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푸근하고 ‘옛스러운’ 우리말을 선보인다. PC로 감상할 수 있는 비디오 트랙에서는 그의 인터뷰 영상과 ‘여름’ 세 번째 악장 뮤직 비디오까지 제공한다. 2000년 9월 미국 뉴욕에서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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