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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4시]'시간표' 믿다가 날마다 지각

입력 | 2001-01-16 19:13:00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이모씨(30·D해운)는 가끔 화가 치민다고 한다. 먼 거리도 아닌데 전동차 소요시간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용하는 구간은 4호선 창동역에서 충무로역 사이. 표준 소요시간은 24분. 그러나 이는 운행표 상의 시간일 뿐이라 게 이씨의 주장이다.

12일 출근길에 기자가 이씨와 동행했다. 전동차가 창동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8시10분. 출발지에서 3구간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어림짐작만으로도 전동차안의 승객은 이미 정원 160명을 넘었다. 다시 다섯번째 역인 길음역에 이르면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 안의 승객들을 밀쳐 넣어 공간을 짜내지 않는 이상 올라탈 수가 없다.

승하차 시간도 덩달아 길어진다. 기준시간은 30초지만 길음역부터는 대부분 45초 이상이다. 환승역인 동대문운동장역에서는 무려 57초.

서행도 잦다. 앞서가는 열차가 늦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충무로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8시42분. 기준시간보다 8분, 즉 33%나 더 걸린 셈이다. 지연시간도 늘 같지 않다. 어느 때는 3∼4분, 어느 땐 10분. 종잡을 수가 없다. 신분증만 대면 자동으로 찍히는 출근부에 2, 3분 늦었다고 지각자로 분류된다. 이씨가 ‘열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하철 운영자들은 지하철의 최대 장점이 정시성(定時性)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시민운동단체인 녹색교통운동이 조사한 결과 러시아워 때 기준시간 1분 내에 도착한 전동차는 31%에 불과했다. 특히 4호선의 경우 5분 이상 늦는 전동차가 88.2%나 됐다.

이렇게 운행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승객의 과다.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는 출퇴근시간대의 혼잡도가 240%까지 올라간다. 승하차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열차집중제어장치(CTC)나 자동열차제어장치(ATC) 등이 낡아 2분30초마다 출발하는 열차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이다.

극히 일부지만 얌체승객들도 문제. 닫히는 전동차문에 핸드백이나 발을 밀어넣을 경우 문을 다시 여닫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10∼15초나 된다.

사정이 이렇건만 지하철공사의 개선노력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개통 이후 27년 동안 지하철공사가 한 일이란 승강장에 ‘푸시맨’을 고용, 승객을 억지로 밀어넣거나 일부 구간에서 차량속도를 규정 이상으로 올린 정도. 그러나 운행시간을 맞추는 데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김경철(金敬喆)박사는 “현재 1.3m인 전동차 문의 너비를 2m로 늘리거나 러시아워 때 평소 10량인 전동차 앞뒤로 1량씩만 추가해도 시간을 엄청나게 절약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리는 언제쯤 시간표대로 다니는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

orion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