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신용훈씨(26·KTB네트워크)는 “업무특성상 외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는 일이 많지만 모자 달린 옷을 입었다고 해서 별로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상대방에게 푸근한 이미지를 줄 수 있으며 보디라인이 펑퍼짐한 탓에 만원 지하철 안에서 부대껴도 안에 입은 정장이 쏠리지 않아 좋다.
‘더플’은 17세기 북유럽 어부들의 옷에서 유래됐다. 추위를 막기 위해 모자가 달려 있으며 찬바람에 언 손으로도 쉽게 여미거나 열 수 있도록 단추 대신 상아로 만든 ‘토글(Toggle)’ 단추와 삼으로 만든 끈이 달려 있다.
최근에는 ‘더플’이라는 이름 아래 갖가지 변형디자인이 속출하고 있다. 모자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고 토글 대신 쇠고리 버클을 부착하거나 아예 단추 부위가 드러나지 않도록 겉감을 대 정통 트렌치코트 스타일을 지향하기도 한다.
모직이나 폴라폴리스(면수건과 흡사한 재질)가 주종이지만 ‘프라다 천’으로 불리며 부피감을 줄인 나일론 코팅의 겉감, 기존제품에 비해 2분의 1이하로 두께를 얇게 한 패딩 소재를 도입한 ‘패딩 더플’도 등장했다. 전통적인 낙타색 카키색 베이지색 외에 겨울코트류로는 흔치 않던 붉은색, 나아가 주황색 분홍색 오렌지색 하늘색 겨자색 등 화려한 원색으로 20, 30대 여성 멋쟁이들을 파고들었다.
지오다노 후아유 닥스 루이뷔통 등 가격 브랜드와 상관없이 더플코트는 현재 백화점 거리매장 어디서나 물량이 달리는 상태. ‘백지영 더플’로 유명한 붉은색 바바리 제품은 130만원대의 고가에도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6%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인덕대 신효정 교수(의상심리학)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패션교복’ 1세대가 재킷 위에 즐겨 입던 옷이 바로 더플코트”라며 “이때 느낀 편안한 이미지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리 어깨 라인이 펑퍼짐한 탓에 ‘힙합패션과의 상관성’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헤지스의 이종미 디자이너 실장은 “지금의 30대 초반 직장인들이 대학 시절 유행했던 힙합스타일에 대한 향수가 더플코트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40대 이상이라도 감색 체크무늬 바지나 터틀넥, 카디건 등을 함께 코디해 입으면 부드러운 이미지는 물론 중후함마저 살아난다. 모자 안에 먼지가 많이 쌓이므로 외출 후에는 털어주는 게 중요하다. 그냥 드라이클리닝을 하면 토글끼리 부딪쳐 상처가 날 가능성이 높아 세탁 전에 쿠킹호일로 토글 부위를 싸주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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