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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배아저씨의 애니스쿨]강의실 밖의 애니, 현장 속의 애니

입력 | 2001-01-17 15:53:00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이미지들(moving images)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이 때의 '움직이는 이미지'들은 자동 카메라를 이용하는 영화 제작방식(live action methods)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첫 순서는 우선 정지된 이미지를 생성하는 작업이다. 즉, 스톱모션의 이미지들을 모으는 일이다. 낱장 낱장의 그림들, 혹은 정지 동작을 취할 수 있는 인형 등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나서 이차적으로 그것들을 차례 차례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 이어진다. 이 결과물이 스크린이나 모니터를 통하여 움직임의 환상(the illusion of movement)으로 재현될 때, 우리는 '애·니·메·이·션'을 경험한다.

우리가 보통 입체 모델을 이용한 애니메이션만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 특정하여 부르는 것은 사실은 잘못된 일이다. 모든 애니메이션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정지된 동작들이 셀(cel)에 그려지든, 입체 모델로 조작되든, 컴퓨터로 합성이 되든 애니메이션을 형성하는 기초 이미지는 프레임(frame, 필름의 한 단위로 영화처럼 동영상을 재현하려면 1초에 24 프레임이 필요하다) 단위의 정지된 시각적 조형물이다. 그런 기초 이미지를 담아내는 재료는 너무나 다양하다. 가장 많이 쓰였던 재료가 종이와 셀이었다. 인형과 점토가 입체적인 기초 이미지를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2D나 3D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컴퓨터 상에서 그 기초 이미지들이 구현되는 작업도 늘고 있다. 이들을 우리는 따로따로 종이 애니메이션(paper animation), 셀 애니메이션, 인형(puppet) 애니메이션, 점토 애니메이션(clay animation, 혹은 줄여서 claymation), 2D 컴퓨터 애니메이션,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등으로 구분한다.

간단한 분류에서 벌써 눈치를 챘을 지 모르겠지만 애니메이션은 기술적 진보와 한 몸을 이루는 예술매체이다. 애니메이션의 기초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어떤 재료나 테크닉도 다 사용이 가능하다. 또 그 이미지들을 2차적인 동영상으로 가공하는 기술과 결합된다면 거의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사실 움직이는 이미지를 눈앞에 생생하게 재현해 온 인류의 역사는 그에 상응하는 기술 발전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라는 메카니즘의 탄생(1895년) 이전에도 인류는 그 당대의 기술이 허용하는 만큼의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우리가 여러 장의 교과서 구석에 위치가 조금씩 달라진 작은 원(정지된 이미지)을 그려 넣고 손가락으로 튀겨(당시 우리에게 허용된 기술) 움직임을 느껴 본 경험이 곧 애니메이션의 기초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뉴미디어의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는 시대에 도달해 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포착하고 이를 '움직이는 환상'으로 재현하는 작업의 인류 역사에는 늘 애니메이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저 고대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 '환타지아 2000'까지. 어쩌면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호모 환타지아(환상을 찾는 인간)의 본성으로 애니메이션과 밀착되어 왔는지 모른다. 영화의 탄생 이전의 프리-시네마(pre-cinema) 시대부터 뉴미디어 영상으로 증폭되는 현대까지 인류는 현실감의 재현(Moving Image)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려는 본능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해왔다. 다시 돌아보아도 바로 그 어떤 방식의 기본은 결국 애니메이션이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연재가 계속될 이 칼럼에서는 우리가 오늘 잊고 있었던 애니메이션의 기초를 더듬어보고자 한다. 물론 우리 현실의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구체적인 실체에 접근하면서. 그래서 여기 모인 글들은 기초 애니메이션에 값하는 실습 강의로되 강의실 밖으로 던지는 강의록과 같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큰 줄기에 비전문가들을 위해서 오해되고 남용되는 애니메이션 개념과 용어를 제작 현장의 목소리로 바로잡아 혼란을 줄여가고자 한다. 가령, '디지셀'은 뭐고 '디지털 페인팅'은 뭔지 등, 지금 실천되는 제작방식과 기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추적하여 알기 쉽게 풀어갈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는 애니메이션 작품의 현황도 기회 있을 때마다 소개하고, 쟁점이 있다면 함께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이 난을 이용해 볼 생각이다. 아무튼 애니메이션의 그물 망에 걸려드는 잡다한 화제를 변죽으로 울려 미술, 음악, 문학, 사진, 영화, 연극, 만화 등과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관련되고 교차되는 지 드러내보고자 하는 욕심이다. 그 집합들, 교접들, 역동성, 차별성... 등 그 비틀림과 입체적인 층위까지, 변화와 미래 모습들을 예감하며... 애니메이션이 21세기 한국의 애니미즘(animism, 물활론)일 수 있도록!

이용배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59년 충남 강경 출생인 이용배씨는 서울대 조경학과,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를 거쳐 서울무비 기획실장으로 있으면서 단편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했다. 현재 계원조형예술대학 애니메이션과 조교수와 영화진흥위원회 진흥위원에 재직하고 있는 그는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최근 장선우 감독과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