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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음악속의 과학]우울증이 천재음악가 낳았다?

입력 | 2001-01-17 18:39:00


26년간이나 우울증을 앓았던 말러는 프로이트에게 정신 치료를 받기도 했다. 매독에 걸린 슈베르트는 사망하기 전까지 병세가 악화될 때마다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고, 모차르트와 베토벤, 재즈 아티스트 찰스 밍거스 역시 우울증 병력을 가지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 중에는 한때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한 경험이 많다고 한다. 우울증에 시달린 예술가는 음악가만이 아니다. 고갱이나 고흐 같은 화가도 우울증 환자였으며, 버지니아 울프, 헤르만 헤세,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우울증을 이겨내며 글을 써야만 했다.

존스 홉킨스 대학 케이 재미슨 교수는 ‘20세기 위대한 예술가’들의 병력을 조사해 본 결과, 38%가 우울증을 앓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아키스칼 교수는 수상경력이 있는 예술가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반 이상이 우울증 병력을 고백했다고 발표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발병률이 5%도 채 되지 않는 우울증이 예술가들에게 흔히 발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울증은 천재들만이 겪는 형벌일까? 켄터키 대학 아놀드 루드비그 교수는 지난 100년 동안 각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1,005명의 위인들이 쓴 자서전을 검토한 결과, 위대한 과학자나 기업인들보다 예술가에게 우울증 발병률이 3배 가까이 높았다고 발표했다. 천재성과는 상관없이, 예술가들이 감당해야 했던 ‘창조의 고통’이 그들을 우울증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한편 신경과학자들은 ‘예술가와 우울증의 관계’에 관해 새로운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예술가들에게 우울증 발병률이 높다기보다는, 우울증이 그들을 위대한 예술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창적이다 못해 엉뚱하기까지 한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계속 맴돈다는 것이 우울증 환자들이 토로하는 증세 중의 하나다. 특히 우울증 환자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운율에 맞춰 말을 하는 경향이 높다는 연구 결과는 시인들에게 우울증이 많은 이유를 짐작케 한다.

우울증 환자들이 경험하는 극단적인 감정 상태의 변화는 때론 창조력의 원천이 되며,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창조력을 위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약을 거부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현재 신경과학자들은 예술가의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보호하면서 우울증 증세를 경감해주는 약을 개발하고 있는데,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닌 것 같다.

(예일대의대 연구원)

jsjeong@boreas.med.yale.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