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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줌인] TV를 끄자

입력 | 2001-01-17 19:11:00


김희주씨(35·서울 동작구 상도동)의 미디어 교육 사례. 네 살된 사내 아이가 TV와 비디오만 보는 통에 걱정이 컸다.

아이는 일어나자 마자 TV를 켜고 낮에도 등 비디오를 몇시간씩 봤다. 잠자리에서도 비디오가 자장가인양 한 두시간 봐야 잠들었다. 처음에는 간접 경험이겠거니 하며 놔뒀다. 특히 아이가 TV에 나온 가수 흉내를 내는 것도 귀여웠고 손님이 왔을 때 아이가 비디오에 집중하느라 ‘얌전히’ 있는 것도 편했다.

그러나 김씨는 갈수록 아이가 엄마와 대화하기, 책보기, 누나와 놀기를 거부하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는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외출도 싫어했다. 급기야 소아과 전문의를 찾은 김씨는 ‘TV 키드’에 관한 충격적인 경고를 들었다.

“시력 약화는 물론 아이들이 TV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상상력이 결핍돼 사고의 폭이 좁아집니다. 움직이는 것도 싫어해 사회 활동에도 지장을 초래할 우려도 있습니다.”

김씨는 결단을 내렸다. TV는 전원 코드를 빼버리고 비디오 플레이어는 아예 치워버렸다. 첫날 아이는 ‘절망’한 것 같았다. 밥도 안먹고 “메이지” “메이지”(비디오 제목)하며 울기만 했다. 김씨는 그럴수록 마음속으로 ‘TV와의 전쟁’을 외쳤다. 4일쯤 지났을까.

아이가 포기하는 낌새를 보였다. 아이는 그림책을 만지작거리고 누나의 놀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도 엄마가 책을 읽어주자 가만히 듣고 있었다. 김씨는 요즘 가슴을 쓸어 내리며 미디어 교육 전문 서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김씨는 다행히 ‘TV 탈출’에서 성공한 케이스다.

그러나 성인이라고 괜찮을까. 방송진흥원의 은혜정 박사는 “성인도 TV를 비판적으로 보기 보다 하릴없이 켜두는 게 생활화되어 있다”며 “TV를 끈 현실이 불안하다면 중독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쯤에서 TV의 가치를 따져봐야 한다. 순기능도 있지만 요즘 방송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편성의 절반에 가까운 오락물은 ‘사고(思考)의 정지’를 요구하고 있고 방송 뉴스도 깊이가 얕아 세태 파악에 어려움을 주는 경우도 있다.

혹한으로 TV 시청률이 급등한다는 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그럴수록 TV를 하루만 꺼보자. 잠시 당혹스럽겠지만 이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