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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의 러프컷]자해공갈단 "너희가 10대를 아느냐"

입력 | 2001-01-18 18:29:00


“혹시 검찰에 불려가거든, 모른다고 해. 당신은 돈이나 구해왔지 작품 내용에 대해선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감독이 혼자 다 한거다, 그렇게. 문제가 생기면 감독인 내가 잡혀갈게. 잡혀가면 돈 좀 버는 거지,뭐.”

영화 ‘눈물’을 만들면서 제작자에게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하곤 했다.

작품을 다 만들고 지난해 가을 부산영화제에 가면서 우린 부랴부랴 등급분류신청을 했다. 혹시라도 등급보류 결정이 나거나 어떤 시비가 붙으면 곧바로 부산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키려는 수작이었다. 아무 논란없이 18세이상 관람할 수 있다는 등급이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부여됐다. 검찰에서도 아무 연락이 없었고.

누구라도 좋으니 건드려만 다오, 그냥 나 죽는다고 누워버릴 테니! 꼭 자해공갈단의 수법 그대로인데, 아무도 건드려 주지 않으니 무색해질 수밖에. 그래서 또 개발한 시비가, 청소년 영화인 이 영화를 왜 청소년이 볼 수 없게 하느냐는 거다.

문화개혁 시민연대에서는 영화 상영과 그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날이 추워서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같이 좀 떠들면서 토론회 모양을 만들고 나오다가, 토론에 참여했던 사람들 거의가 시민연대 쪽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됐다. 뜨끔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 꼴이었으니까.

‘하자 센터’의 10대들이 주관한 ‘눈물과 함께 하는 디스토리 페스티발’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눈물’속의 장면들을 냉소적으로 패러디한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어 막간에 틀어가며 토론을 하는데, 그야말로 감독에게 ‘맞장 뜨겠다’는 의기가 양양했다.

가출, 집단강간, 원조교제 따위를 얄팍하게 건드리기만 했지 정작 뭔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10대에 대한 알량한 자비심만으로 일관하는 이 영화는 위선적이다, 우리 모두가 영화속 인물처럼 그렇게 섹스광으로 보이냐, 청소년에 관한 시사 다큐멘터리가 청소년을 왜곡하는 것과 다를 게 뭐냐, 꼭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어야 문제아가 되는 건 아니다 등등. 결국 넌 10대를 아는 척하지 말라, 까지.

긴장이 되긴 했지만 난 곧 수습했다. 이건 일단 얘네들이 영화를 흥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그래서 최소한 얘깃거리는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는 거라고 혼자 믿어버리기로 한 거다. 그러고 나니 토론이 재미있고, 기발했으며, 자유롭고, 귀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영화를 팔아먹기 위해 10대들한테까지 자해공갈단 노릇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함을 덜 수 있어서 마음이 가벼워졌다.

뒷풀이에서 밥을 먹는데 한 소년이 말을 건다. “감독님, 아까 우리 때문에 짜증났죠? JSA전우회 사람들이 ‘공동경비구역 JSA’가 실제랑 다르다고 항의한 거하고 똑같잖아요.” 난 그저 씩 웃는다. “아니에요, 나 같았어도 짜증났을 거예요.”

namu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