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러 갔다. 그 명성을 들은 지 오래건만 이런 저런 이유로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 드디어 숙원을 이룬 셈이다. 과연 명성에 걸맞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는 부분은 500년 사직의 끝머리에서 무너져 내리는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명성황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서세동점의 거센 파도에 표류하는 조각배 같은 조국의 운명 앞에서 그녀가 “백성이여 일어나라!”고 외치자 이에 호응하는 백성들이 함께 어우러진 피날레는 압권이었다.
조선은 18세기 진경문화의 전성기를 절정으로 19세기에 이르면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외척세도정치라는 과두독재체제는 정치력을 상실해 국가사회의 해체를 가속화하면서 민심의 이반을 초래했다. 대원군의 개혁도 사양길에 접어든 조선의 운명의 키를 돌려놓지는 못했다. 이렇게 내부적 결속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강력한 외세가 밀려오자 대응능력이 한계에 부닥치고 끝내는 국모(國母)가 구중궁궐에서 일본의 자객에 의해 시해당하는 치욕을 당하게 됐고 그 끝은 망국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재 어렵게 쟁취한 광복과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온 지 오래더니 드디어 곳곳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폭설에 공조직이 무너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선거 때 권력기관의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명단이 폭로돼 정치판이 무너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한파에 가정까지 무너져 고아아닌 고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도다.
천재지변에 무방비였다는 사실보다 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관계공무원들의 무책임한 대응자세였다. 온 국민이 눈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인데도 관련기관의 고위직 공무원들은 아랑곳하지 않다가 뒤늦게 보도자료나 만들어 홍보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정치권은 자고 깨면 정쟁이다. 또 다시 덮쳐온 경제난국을 지혜롭게 극복해나갈 지도력을 확인하고 위로받고 싶어하는 국민은 날마다 폭로전에 이전투구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실망하고 허탈하다 못해 살맛조차 잃게 됐다. 이제는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치인지 원초적 질문조차 퇴색해버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려운 일은 가정이 무너지는 현상이다. 가정은 국가사회의 기초단위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무너지고 국가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것만은 아니다.
늘어나는 이혼과 그에 따른 기아(棄兒)현상에 대한 전문가의 진단도 경제난은 외형적인 이유일 뿐, 젊은 부모들의 책임감 결핍과 가치관의 전도가 더 본질적인 문제이고 부모들의 이기심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였다.
지난 세월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어렵게 살았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사람에게는 혼과 백이 있는데 혼만 잃지 않으면 영원히 살아남는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의 독립을 확신했다. 6·25전쟁으로 연명하기도 어렵던 시절 껌팔이를 하거나 엿목판을 메고 저잣거리를 헤매며 하루의 양식을 구하던 기억을 가진 이들이 많을 것이다. 가정은 그 고생을 이겨내는 구심점이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는 고통을 함께 하는 것조차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세상살이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사람들에게는 삶의 희망과 보람이 필요하다. 가정은 그 희망의 보금자리이자 삶의 보람을 일구어내는 요람이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방향감각을 갖고 사람답게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공염불이 되었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윗물이 아니고 썩은 하수가 된지 오래다. 민주주의란 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말일진대 정치인은 국민이 뽑은 공복(公僕)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을 향한 윗물타령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국민이 윗물이 되어 고통을 이겨내고 가정을 지키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할 시점이다. “국민이여 각성하라!”는 명성황후의 목소리가 저 아득한 명부(冥府)에서 들려오는 듯 싶다.
정옥자(서울대 교수·규장각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