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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포커스]일-중문판도 낸 '영어공부…'저자 정찬용씨

입력 | 2001-01-18 18:43:00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는 도발적 제목의 영어학습책이 15일 일본서 번역출간됐다. 다음달 초엔 중국에서도 출간된다. 그것도 ‘크레이지 잉글리시’로 유명한 리양(李陽)의 책을 낸 세계사에서 나온다. 한국 사람이 쓴 영어학습책이 일본과 중국으로 거의 동시에 수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 지난해 국내서 110만부가 팔려 영국인작가의 ‘해리 포터’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나간 밀리언셀러가 됐다.》

한국의 ‘Don’t Study English’가 왜 일본과 중국에서 관심을 끈 것일까. 저자 정찬용(鄭讚容·43)씨는 “일본이나 중국이나 우리와 마찬가지로 영어공부를 하는데도 우리처럼 효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즘 중국서는 영어만 잘하면 신분상승이 급격히, 확실히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관심이 대단합니다. 출판사관계자와 현지 기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 ‘크레이지 잉글리시’와 무엇이 다르냐는 점이었지요.”

리양이 암기를 강조하는데 비해 정씨는 암기하지 말라고 하는 점이 다르다. 아무리 단어와 표현을 외우더라도 실제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게 그의 지론. 상황이 외운대로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공부(Study)하듯 외우는 두뇌와 그냥 배우고 익혀서(Learn) 입으로 나오게 하는 두뇌는 다른 부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술꾼들이 “술 들어가는 배와 밥 들어가는 배는 다르다”고 하듯이.

“리양보다는 내 방식이 더 승산있다”는 그는 영어강사도, 교육전문가도 아니다. 독일서 조경 및 환경개발학 박사를 받았고 에버랜드 환경디자인센터 소장직을 거쳐 지금은 한국오픈스페이스연구소를 열고 있다. 직장에서 자신이 영어 좀 하는 것을 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느냐”고 자꾸 묻길래 시작한 영어학습서 발간은 그의 운명까지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1999년 여름에 낸 책이 외국어학습서로는 처음으로 그해 하반기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자 직장에서 ‘견제’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엑스포과학공원 리모델링 현상공모에 당선되는 등 성과도 만만치 않았는데 지난해 초 팀장인 정씨만 빼놓고 팀원들이 몽땅 다른 부서로 옮겨져 버렸다. 그만둘 수 밖에 없는 상황. 책상만 있는 사무실에서 두달을 놀다가 회사를 나왔더니 오히려 행복해졌다. “환경조경학이라는 전문성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영어와 관련된 일은…이제는 내게 주어진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영어학습법엔 독일유학에서 겪은 경험이 농축돼 있다. 84년 유학을 가기 전 그는 자신이 독어를 꽤 잘한다고 자신만만해 있었다. 친구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뭐든 독어로만 말하기도 했는데 정치 경제 사회부터 소소한 일상생활까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런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해 ‘기차역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못알아듣는 거예요. 수업시간엔 내가 입을 열면 학생들이 와르르 웃구요. ‘나는 개를 키운다’는 말을 ‘본인은 견공을 양육한다’는 식으로 말했으니까. 내가 독어공부한 방식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거죠.”

절망한 그는 살아있는 독어를 익히기 위해 값싼 흑백TV를 샀다. 때마침 한파가 몰아닥쳐 집밖 출입을 못하게 된데다 설상가상으로 돈마저 떨어졌다. 열흘을 굶으면서, ‘에너지보존’을 위해 눈까지 꼭 감고 누워서 거의 같은 뉴스가 반복되는 TV만 ‘들었다’. 오랜만에 열린 어학코스 첫수업에서 그는 귀가 뻥 뚫렸음을 직감했다. 남들은 1, 2년씩 걸린다는 독일대학 유학생 어학시험을 반년만에 통과했다.

래서 그는 중고교에 ‘잉글리시 온리 존(English Only Zone)’을 설치하겠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최근 발표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인프라없이 형태만 갖추겠다는 기존의 교육행정적 발상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영어교사도 생활영어에 익숙지 않은 마당에 ‘영어 지역’을 만들어봤자 콩글리시만 판칠 것이 분명하다는 얘기. 게다가 영어 사교육 열풍이 더 거세질 거라고 우려한다.

“그러면 도대체 영어를 어떻게 공부하란 말이냐”고 물었다. 세계화 국제화 시대, 정보의 바다 인터넷은 영어로 가득차 있다는데 어떻게든 영어를 좀더 시켜보려는 교육당국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씨는 낮은 목소리로 “영어는 꼭 필요한 사람만 필요할 때 익히면 된다”고 말했다.

대신 중고교에서는 영어를 중국어 일어 스페인어 인도네시아어 등 다른 외국어와 똑같이 선택과목으로 두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영어 아니면 살길이 없다는 생각 대신 다른 외국어를 하면 시장은 좁더라도 기회는 더 많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 ‘뒤집어 생각하기’가 그의 특징이자 취미라더니 맞는 모양이다.

“영어보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독일 유학 중에 된장찌개를 만들어 먹다 기숙사 동료에게 공격받은 적이 있습니다. ‘치즈나 너희들이 좋아하는 자우어크라우트 냄새와 무엇이 다르냐. 다른 문화, 다른 가치관에 대한 배려가 그렇게 없느냐’고 맞받아쳤더니 금방 항복하더군요. 그날 우리는 청국장까지 끓여먹었습니다.”

그는 운명을 믿는다. 삶은 그의 의도와 달리 제멋대로 흘러갔다. 책, 그것도 전공과 관계없는 영어학습서를 써서 돈벌 생각은 없었는데, 아직 다 받지는 않았지만 5억원 가량의 인세가 생길 예정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잘나가던 직장에서 떨려나고 새 일을 갖게 됐다.

“성격이 팔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면 영어 잘하느냐고 자꾸 묻는 것이 귀찮았던 성격 때문에 책을 낸 것이 베스트셀러가 됐다면 그것도 내가 만든 운명이겠지요.그래서 삶이 재미있는 게 아닐까요.”

▼정찬용식 영어학습법▼

▽1단계〓수준에 맞는 영어 카세트 테이프 ‘한 개’를 하루 두번씩 듣는다. 매일 듣되 6일 후에는 반드시 하루 쉰다. 그래야 우리 뇌가 마구 쌓인 정보를 분류 저장한다.

▽2단계〓처음 들었던 테이프를 받아쓰기 하되 한문장을 끝까지 듣고 기억하는대로 받아쓴다. 혀에 달라붙을 때까지 큰소리로 읽는다.

▽3단계〓받아적은 내용 중 모르는 단어를 영영사전으로 찾는다. 해설과 예문을 적고 완전히 체화될 때까지 낭독한다.

▽4단계〓영화 등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매일 한번씩 본다. 다 들리면 받아쓰기 후 낭독한다.

▽5단계〓미국신문을 구해 짧은 기사부터 여러번 낭독한 뒤 누군가에게 얘기해주는 기분으로 읊어본다.

만난사람=김순덕차장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