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여야 공방이 다소 소강 국면으로 접어든 19일 정치권에선 대한불교 조계종 정대(正大)총무원장의 발언이 단연 화제였다.
정대스님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해 "그 사람이 집권하면 단군 이래 희대의 보복정치가 난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한 것은 그동안 여권에서 내놓은 어떤 비난논평이나 성명보다도 독하고 아픈 얘기였기 때문이다.
정대스님은 이날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의 예방을 받고 이총재에 대해 "대통령이 인기가 없다고 피킷을 밟고, 당을 떠나라며 쫓아내고, 김광일 신상우 공천 안주고 얼마나 독하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는 97년 대선 때 신한국당 경북 구미지구당(당시 위원장 박세직·朴世直전의원)에서 일어난 03마스코트 몽둥이질 사건과 당시 이회창총재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탈당을 촉구한 일, 그리고 작년 총선 때 민주계 중진인 신상우(辛相佑)전 국회부의장과 김광일(金光日)전 대통령비서실장을 공천에서 탈락시킨 것 등을 얘기한 것이었다.
다음은 정대스님과 김대표의 일문일답.
▽정대스님=정권 초창기의 여론은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적미적해서 여론이 돌아가고 있다. 1000억원이 안기부 돈이든 정치자금이든 안기부에서 나온 것이 문제 아니냐. 영수회담에서 상생의 정치를 합의했다. 그런데 (야당은) 한 건 가져가면 또 뭘 가져갈까 궁리가 뿐이다. 이제 끝을 내야 한다. 국민들의 마음 속을 편하게 해야 한다. 5년 믿고 투표한 것 아니냐. 잘했건 못했건 지켜봐야 하는데….
▽김대표=야당이 입만 열면 총선 민의를 주장하나 97년 대선 민의도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5년 국정을 끌고 갈 책임과 의무가 있다. 야당이 대통령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런 발상을 보면 흠칫 놀라게 된다. 나라 운명 맡겨놨으면 아끼고 감싸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대스님=야당이 정권재창출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잘하면 일본은 50년도 하고 미국은 3선, 4선도 한다. 잘하면 10년이고 몇 백년이고 하는 것이다. (야당이)안맞는 소리를 자꾸한다. 그런데 국민이 그걸 들어요.
▽김대표=권위주의적 통치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정대스님=그 사람이 집권하면 단군 이래 희대의 보복정치가 난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것을 국민들이 감지해야 하는데…. 이 정권도 실수한 것이 있다. 의약분업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고 시행해서 민심이 좋지 않았다.
정대스님은 이어 신년대법회 봉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시골사람 한명이 마음을 잘못 먹으면 기껏 세사람 죽지만, 지도자가 한번 생각을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피를 보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 좀 조용하고 편하고 안정된 사회에서 살아야 하는데 정치인들 몇사람이 싸우는 통에 피해를 봐야 하느냐. 상생이란 말은 원래 부처님 말씀이다. 앞으로는 불자들이 비상생하는 사람을 전부 쓸어내자는 각오로 일해야 한다. 한 사람의 독선으로 인해 무수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상생을 실행하는지 안 하는지 스님이 감시해야 한다."
김대표는 정대스님 예방 후 "원장 스님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소식을 전해듣고 "참으로 믿고 싶지 않다" 며 "내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좋지 못한 편향된 말" 이라고 말했다. 권대변인은 또 "종교지도자 만큼은 이성을 잃지 않고 중립에 서서 잘못된 정치흐름에 대해 올바른 충고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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