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장욱진 화백(1917∼1990) 10주기 회고전 개막식에서 장 화백의 유족으로부터 감사패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20대 젊은 시절부터 60대 초로의 나이가 될 때까지 40여년 동안 장 화백에 관한 자료라면 무엇이든지 모아서 만든 스크랩북을 화가나 그 가족에게 전해온 평범한 미술애호가 조연옥씨. 그는 틈나는 대로 장 화백의 전시팜플릿은 물론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화백 관련 글, 화백이 잡지에 그렸던 삽화, 화백 전시 개막식 사진, 심지어 화백 부부가 어패류 전시를 관람하는 잡지 화보까지 수 백점의 자료들을 꼼꼼히 모아 그때 그때 생전의 화백이나 유족에게 전해왔다. 이렇게 전달한 스크랩북이 10권이 넘는다.
조씨가 모아 온 자료들은 최근 서울대 미대 정영목 교수가 장 화백의 작품과 작가활동을 총정리한 ‘장욱진 카탈로그 레조네’를 펴내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서울 순화동 호암갤러리에서 요즘 열리고 있는 ‘이인성 작고 50주기 회고전’에는 미술애호가인 서울 홍익고 황정수 교사가 어렵게 발굴해낸 이인성의 화첩이 처음 공개돼 관람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일제시대 때 사용된 검은 사진첩에 명함 크기의 작은 종이를 붙여 세필로 그린 그림 120여점이 실린 이 화첩은 미술사의 공백을 메워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929년 당시 19세이던 이인성은 이 화첩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의 풍경, 대나무 위의 새와 해오라기 등 고향의 산야를 소박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이인성이 우리 민족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작품활동을 했다는 기존의 부정적 평가와는 달리 한 획의 붓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등 우리 고유의 문인화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해석한다.
미술계의 기록과 자료들을 꼼꼼히 챙기는 이같은 미술애호가들의 집념이 있기에 그나마 멸실 위기에 처한 자료들을 찾아 우리 미술사를 복원해나갈 수 있는게 아닐까.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화가에 관한 자료를 열심히 수집하고 연구하는 ‘개미’ 애호가들이 더 많아 지길 기대해본다. 그럴 때 미술사는 더욱 풍성해지고 이에따라 창작의 바탕도 튼튼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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