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과 약식은 생략하고 과일도 5가지에서 3가지로 줄였습니다. 조기 대신 부세를 사고 동태전은 아예 빼버렸고요. 고기도 12근 사던 것을 3분의1 정도 줄였습니다.”
21일 오후 설을 앞두고 차례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동네 시장을 찾은 주부 이은림씨(40·경기 안산시 성포동). 이씨의 손에는 지난해에 비해 가짓수와 양을 대폭 줄인 설 차례상 음식목록을 작성한 메모지가 들려 있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설을 앞두고 주부들의 장바구니 경기 체감지수도 여느 때보다 썰렁해지고 있다. 설 음식을 장만하는 주부들은 지난해보다 20∼30% 이상 긴축시킨 예산을 편성, 씀씀이를 대폭 줄이고 있으며 시장 상인들은 설 대목을 맞고도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한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유통업체에 따르면 올해 설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은 물량부족으로 가격이 치솟았던 지난해 추석보다 훨씬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농협유통이 추산한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은 8만330원으로 지난해 추석보다 4만6000여원이 줄어든 액수다.최근 설 성수품 가격조사를 벌인 서울시도 20개 제수용품 가운데 11개 품목이 지난해 설과 비교해 하락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연말연시에 보너스를 받지 못하는 등 수입마저 줄어든 가정이 많아지면서 지난해에 비해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매는 가정들이 많아지고 있다.
경기 일산에 사는 주부 서희석씨(39)는 “과일 값이 오히려 내리는 등 물가가 크게 오른 것 같지는 않지만 설이 연초에 일찍 찾아와 가계부담이 크다”며 “특히 2월 이후 아이들의 졸업과 입학이 잇달아 이 때를 위해 설 지출을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가변동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도 주부들의 씀씀이가 예전 같지 않아 상인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서울 중부시장에서 건어물상을 하는 김철준씨(30)는 “북어포가 지난해와 비교해 가격차가 별로 없는데도 매상은 30% 이상 떨어졌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좀더 싼 것을 찾는 손님들이 많으며 특히 비용을 줄이기 위해 한 마리에 1만∼2만원하는 조기 대신 사촌격인 5000원 안팎의 부세를 찾는 손님들도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콩과 팥, 녹두, 곶감 등 제사용 음식도 2∼4배 가량 비싼 국내산 대신 중국산을 찾는 수요가 크게 늘면서 설을 앞둔 시장에서는 ‘중국산 특수’마저 일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한 상인은 “녹두는 한 말에 7만원하는 국산 대신 2만5000원하는 중국산을, 곶감도 1㎏에 1만2000원하는 국산 대신 4500원하는 중국산을 찾는 손님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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