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하던 코트에 이변의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21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테니스대회 남자단식 16강전. 지난해 US오픈 챔피언으로 2번 시드의 마라 사핀(러시아)과 메이저 최다승(13승) 기록 보유자인 3번 시드의 피트 샘프러스(미국)가 8강 문턱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사핀은 세계 16위 도미미크 흐바티(슬로바키아)에게 0―3(2―6, 6―7, 4―6)으로 무너졌고 샘프러스도 95년 이후 13연승을 달리던 토드 마틴(미국)에게 1―3(7―6, 3―6, 4―6, 4―6)으로 역전패했다. 이로써 이 대회 남자단식 8강에는 톱시드의 구스타보 쿠에르텐(프랑스)을 비롯해 상위 3명의 시드 배정자가 모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돌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대회 2연패를 노리는 안드레 아가시(미국)는 홈팬의 열열한응원을 등에 업은 앤드루 일리에게 3―1(6―7, 6―3, 6―0, 6―3)로 역전승, 타이틀 방어를 향해 순항했다. 경기에서 승리하고 나면 입고 있던 셔츠를 갈기갈기 찢는 등의 특이한 쇼맨십으로 시선을 끈 일리는 아가시(27개)의 2배 이상 되는 63개의 에러로 무너졌다.
여자단식에서는 ‘러시아의 요정’ 안나 쿠르니코바(19)가 3년반 만에 처음으로 그랜드슬램대회 준준결승에 올랐다. 8번 시드의 쿠르니코바는 독일의 바바라 리트너를 1시간4분 만에 2―0(6―3, 6―1)으로 가볍게 눌렀다. 이로써 쿠르니코바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4강까지 올랐던 97년 윔블던 이후 42개월여 만에 다시 메이저대회 8강 무대를 밟았다. 쿠르니코바는 “바로 어제 일 같은데 세월이 참 빨리 흘렀다”며 기뻐했다. 섹시한 외모로 뜨거운 인기를 누린 것과 달리 단식 무관에 그쳐 주위로부터 ‘반쪽짜리’라는 비난까지 들었던 쿠르니코바는 이번 대회에서도 명예회복은 그리 쉽지 않을 전망. 지난해 우승자인 강호 린제이 데이븐포트(미국)와 4강행을 다투기 때문. 데이븐포트는 이날 16강전에서 15번 시드인 벨기에의 킴 클리스터를 2―0(6―4, 6―0)으로 완파했다. 이날 클리스터는 애인인 호주 테니스의 차세대 주자 레이튼 휴위트의 열띤 응원에도 불구하고 35개의 에러로 자멸했다. 데이븐포트는 쿠르니코바와의 역대전적에서 5승3패로 앞서 있으나 최근 맞붙었던 지난해 샌디에이고 대회에서는 풀세트 접전 끝에 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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