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고향)이 시골인 필자로서는 매년 설만 되면 아련한 옛 추억에 잠기곤 한다. 아직 산업화가 되지 않았던 때라 大小家가 한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가깝고 먼 親戚(친척)을 다 합치면 스무 집은 족히 되었으며 꼭 챙겨야 할 親戚도 여섯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매년 추석이나 설과 같은 名節이 되면 죽 한 바퀴 돌면서 茶禮를 올렸는데 자연히 뒤로 갈수록 ‘形式’에 치우치곤 했다. 더구나 어렸을 때였으므로 茶禮 그 자체보다는 또래의 親戚들과 함께 어울리는 재미가 더 있었다. 그래서 茶禮 중에 장난을 치다 어른들로부터 야단을 맞았던 기억도 숱하다.
名節 중에서도 설이 되면 더 설레었다. 새 옷을 입는 재미도 재미려니와 한 살 더 먹는 것도 그 때는 싫지가 않았으며 특히 세뱃돈이 큰 몫을 했던 것이다. 어려웠던 때라 당시 1원짜리 지폐 한 번 쥐어 보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정말 드물게 현금을 ‘만질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歲拜는 정월 초하룻날 차례를 올린 다음 어른들에게 올렸던 새 해 첫 인사다. 설빔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웃어른에게 절을 올리는데 요즘 아이들이야 영악해서 한 마디 德談 쯤이야 빠뜨리지 않지만 옛날에야 어디 그랬는가. 그저 넙죽 절하고 나면 내심 기다려지는 것이 세뱃돈이었다. 그래도 美風良俗은 남아 있던 때라 歲拜가 끝나면 이번에는 동네 어른들에게 歲拜를 올려야 되는 것으로 알았다. 꼭 찾아뵈어야 할 어른들이 계셨기 때문에 일일이 歲拜를 올리고 나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대개는 강정이나 감주 따위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아름다운 風俗이 언제부터 있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연원이 中國인 것만은 분명하다. 알다시피 중국 사람들은 음력설을 제일 중요한 名節로 여기는데 中國이나 臺灣은 무려 10일 정도를 公休日로 指定하여 쉰다. 설을 ‘過年’(꾸어 니엔)이라고 하며 이 때가 되면 民族의 大移動은 물론 전 세계의 華僑(화교)들조차 爆竹(폭죽)을 터뜨리면서 요란하게 쇤다.
또한 歲拜를 拜年(빠이 니엔)이라고 하며 우리와는 달리 선 채로 허리만 숙이는 이른바 鞠躬(국궁)을 행한다. 이 때 받는 것이 壓歲錢(압세전)이다. 붉은 봉투에 넣어 준다고 하여 紅包(홍 빠오)라고도 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모든 축의금을 붉은 봉투에 넣어서 준다. 알다시피 붉은 색은 ‘吉祥’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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