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술안주인 삼겹살이 ‘업그레이드’되면서 퀴퀴한 고기굽는 냄새가 나던 삼겹살 집이 ‘삼겹살 카페’나 ‘삼겹살 바’로 ‘리노베이션’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삼겹살에 소주 한잔’도 ‘삼겹살에 와인 한잔’으로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삼겹살을 찾는 젊은 층과 여성고객이 늘고 있다.
허브의 맛과 향이 풍기는 ‘허브삼겹살’. 색깔도 푸른색이다. 담백한 콩가루에 묻혀 먹는 게 제 격이다. 턱시도를 차려 입은 지배인이 손님에게 프랑스 포도주인 ‘메독’을 한잔 씩 따라주며 흥을 돋운다. 테이블이 꽉 찬 오전 1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달포 전쯤 문을 연 신개념 삼겹살집인 ‘코기코기’의 풍경이다.
회식장소로 자주 이용한다는 회사원 서영주씨(29·LG패션)는 “분위기가 카페 같고 늦게 까지 문을 여는 탓에 간식처럼 삼겹살을 먹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곳의 영업시간은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등나무집’ ‘젠젠’ ‘왕삼겹닷컴’ ‘화롯가이야기’ 등 서울 강남과 신촌일대 신개념 삼겹살집의 상당수가 이처럼 심야영업을 하며 아예 24시간 문을 여는 곳도 적지 않다. 밤낮이 뒤바뀌거나 늦게 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은 전문직 혹은 벤처기업 종사자들의 야식과 뒤늦은 술자리 때문.
통삼겹 생삼겹에 고추장 쌈장이 고작이고 기껏해야 기름소금 소스 정도가 추가되는 것이 보통이었던 메뉴와 소스도 진일보했다. 일본 된장을 발라 놓은 미소삼겹살, 대나무통에 와인과 함께 절여 숙성시킨 대나무삽겹살, 이탈리아 피자나 파스타 요리에 주로 쓰이는 ‘바질리고’소스에 버무린 삼겹살, 서양고추인 ‘파브리카’와 버무린 붉은 색 삼겹살 등.
콩가루, 스테이크 소스, 머스터드 소스, 각종 채소와 간장을 끓여 만든 특수 소스 등을 두루 겸비해 ‘찍어먹는 맛’도 달라졌다. 소재만 삼겹살일 뿐 소스와 양념에 따라 ‘서양식 폭찹’이나 ‘햄버그 스테이크’ 비슷한 맛을 내는 메뉴도 있다. 주방장들은 체인화된 일본의 유명 고기집들이 대부분 10가지 이상의 소스를 사용해 고객의 기호를 충족시키는 점을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서울 신촌로터리 부근의 ‘젠젠’은 ‘젠(Zen·禪)’사상을 실내장식에 가미해 고상하면서도 차분한 위기다. 녹색 계통의 꽃과 난초들이 테이블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서양의 테라스처럼 아래위로 터진 창틀 밖으로는 대나무를 촘촘히 심어 놓아 자연의 향기를 더했다. 주홍불빛의 조명과 재즈음악이 곁들여지면 고기 굽는 곳보다 포도주 한잔을 놓고 정담을 나누는 테이블 수가 더 많아진다. 백남준의 그림을 비롯해 동양화 판화 등 벽 곳곳에 걸린 미술작품들이 고급스러움을 더해 준다.
상추 청경채 마늘 고구마 호박 대파 버섯 등 부속 야채를 따로 놓인 ‘샐러드바’에서 얼마든지 덜어 먹을 수 있게 한 것도 특징. 손님과 종업원이 “야채 좀 더 주세요” “기다리세요” 하고 고함을 지르지 않아도 돼 차분한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서울 삼성역 부근의 ‘구이 삼국지’는 테이블 위의 실내장식을 ‘몽골천막’으로 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홀 중앙에는 ‘열린 주방’이 있어 이곳에서 1차 구이를 끝내기도 한다.
음식평론가 이윤화씨는 “최근 삼겹살집들이 일본식 마케팅법과 유럽풍 메뉴 개발을 절묘하게 엮는 데 성공해 단순히 미각만이 아니라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례가 드문 ‘복합휴식공간’으로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cij1999@donga.com
◇"고기 냄새 걱정마세요"
마늘향과 섞이기 마련인 ‘고기 냄새’는 삼겹살집의 최대 ‘유해 환경’이었으나 최근에는 이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업소들이 적지 않다.
“돼지 냄새가 스며드는 것이나 신발을 꼭 벗고 들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 곳이 많았죠. 요즘은 쾌적한 상태에서 여유롭게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어요.”
‘등나무집’을 찾은 양지윤씨(24·홍익대 불문4)는 겉옷과 가방 등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개인 사물함이 구비돼 있는 게 한결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깔끔한 손님들을 위해 현관 앞에 향수나 스프레이를 마련해 놓은 곳도 있다.
‘불판’의 기능을 개선 보완한 것도 특징이다. ‘왕삼겹닷컴’은 삼겹살을 꼬치에 꿰어 회전 바비큐식으로 굽는다. 고기에 직접 ‘불’이 닿는 것이 아니라 ‘열’을 계속 주입하는 방식이어서 연기가 나는 것을 최소화했다.
테이블에 내장된 장어구이식 철판을 사용, 기름과 연기가 모두 밑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설계한 곳도 많다. ‘코기코기’의 이민석 대표(35)는 “특히 여성 고객 유치를 위해 옷걸이 사물함 등은 기본 소품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실내에도 고기 냄새가 ‘압도’하기 전에 허브향이나 민트향을 적절히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