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악마들
외규장각 도서 문제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적이 있다. 외규장각 소장품은 한 주권국가가 소중히 보관하던 문화재를 다른 국가가 강탈해 간 것이고, 따라서 돌려받을 권리와 돌려줄 의무가 분명한 사안이다. 그러나 아무도 가치를 인정하지 않은 채 버려둔 사막의 사라진 도시에서 뜯어간 유적들의 경우, 그 행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실크로드의 악마들’(피터 홉커크 지음 김영종 옮김·사계절·2000)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중앙아시아의 유적들을 발굴하고 수집하는데 목숨을 건 탐험가 6명의 행적을 좇으면서, 그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마르코 폴로 이래 가장 위대한 아시아 탐험가’라 불린 오렐 스타인을 위시한 이들 탐험가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사막에 묻혀 있던 문화재를 발굴하고 반출함으로써 그 존재를 서양에 알렸지만, 오늘날의 안목에서 보면 ‘고고학적 도둑’들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중국 정부도 이들의 발굴을 저지하지 않았다. 서양인만이 유적을 훼손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미처 반출하지 못한 문화재는 그 지역의 종교적 종족적 갈등 속에서 없어졌고, 그리고 비료로 쓰기 위해 벽화의 안료를 마구 긁어간 현지 주민들의 무지에 의해서도 사라져갔다. 그렇다면 ‘도둑’들이 문화재를 그나마 구해낸 것이 다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고고학적 도둑질’이 없었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유물이 보존될 수 있었을까 지적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구출’을 위한 것이었다 해도 한 민족에게서 그들의 유산을 박탈해 버린 행위가 과연 도덕적인가 하는 미묘한 문제를 제기한다.
10년쯤 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고고하게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바라보면서, 런던에 따로 떨어져 있는 엘긴 마블이 합쳐진다면 이 아름다운 건축물이 얼마나 더 황홀할까 상상해 보고 짜릿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에 기세 좋게 전시되어 있는 엘긴 마블처럼만 대접받는다면 유적이 굳이 본래 장소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이 책의 저자도 지적하듯이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수집된 유물의 대부분이 서양의 거대 박물관에서 제대로 전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소장품이 너무 많기 때문에 괄시받고 있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본고장으로 돌려준다면 본국에서 그 문화재들의 가치가 한껏 빛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문화 유적이 누구의 것인가의 차원이 아니라 누구에 의해 그 진가가 온전히 발휘될 수 있을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어느 특정 민족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것들을 지켜 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서울대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