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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진단]판교일대 녹지가 무너진다…10만평 훼손

입력 | 2001-01-27 18:39:00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 개발 예정지 부근 ‘녹지벨트’가 무너지고 있다.

수도권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평가되는 판교의 개발 문제에 대해 이해 당사자들은 물론, 정부와 여당간의 의견 차이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외곽에서는 무분별한 난개발(亂開發)이 속속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의 ‘불길’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편승해 가까운 용인 지역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다.》

▽실태〓27일 오전 경기 성남시 수정구 한국도로공사 정문 바로 아래. 몇 달전만 해도 나무들이 가득했던 6000여평의 녹지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간밤에 내린 눈 위에 잘려나간 나무의 흉물스러운 밑둥들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전원주택 64채를 짓기 위한 토목공사 현장이 돼 버렸다.

도로공사 건물 건너편에 펼쳐져 있던 1만여평의 논밭과 임야도 한창 진행중인 2개 단지의 전원주택 기초공사로 인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분당구 석운동 대한석유공사 앞 비좁은 도로 양쪽도 개발 바람의 무풍지대가 아니다. 20여채의 전원주택이 하천부지와 농경지 산자락 곳곳에 점령군처럼 자리잡고 있다.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궁내동 393번 지방도변 궁안마을과 쇳골마을에도 개발 강풍이 밀어 닥쳤다. 자연녹지와 보전녹지 안에 있는 논밭과 임야 등이 택지로 형질 변경된 곳에 3월 완공 예정인 300여가구의 대형 빌라 건축과 전원주택단지 조성이 한창이다.

분당구 백현동 남서울골프장 위쪽 4만5000평의 산정상 택지에는 이미 142가구의 전원주택 건축 허가가 났으며 올해안에 30여 가구의 건축 허가가 추가로 나올 예정이다.

▽난개발 도미노 우려〓난개발의 불길은 가까운 용인시 수지읍 동천리, 고기리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분당구의 건축 허가 835건 중 70%가 이 지역에 집중됐다. 성남시가 이 지역에 내준 연립주택 건축 허가는 10여건에 200여가구. 이처럼 판교 일대에서 주택단지로 조성 중인 곳은 40여개 단지에 1500여가구, 부지만 10만여평에 이른다.

이 지역은 76년 개발제한구역에 준하는 남단녹지(1900만평)로 묶여 개발이 제한돼 오다 분당신도시 조성 뒤인 98년 5월 보전녹지로 바뀌어 건축이 가능해졌다. 판교지역은 개발예정지(280만평)로 묶였지만 나머지 지역(1023만평)은 대지로 형질 변경만 하면 건폐율 20%, 용적률 60%까지 건축이 가능해진다. 이같은 녹지 훼손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분당구 관계자는 “상하수도와 도로 등 도시 기반시설의 전제조건만 갖춘다면 법적으로 건축이 허용된 지역에 대해 막무가내로 개발을 제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개발 열풍과 맞물려 땅값도 뛰기 시작했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들은 “남단녹지가 풀리고 판교 개발이 가시화한 지난해부터 이 지역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며 “보전녹지는 평당 60만∼180만원선, 자연녹지는 평당 150만∼25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은 없나〓판교 외곽의 개발 열풍에 개발 예정지구 내 주민들은 더욱 반발하고 있다. 판교 주민들은 “정부가 외곽지역의 난개발을 사실상 조장하면서도 우리 지역만 발목을 잡고 있다”며 “빠른 시일안에 개발을 하든지 건축 제한을 철폐하든지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행 규정상 판교 외곽의 개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성남시의 고민이다. 성남시는 지난해 7월 난개발을 막기 위해 보전녹지를 형질 변경할 수 있는 자격을 ‘3년이상 성남시 거주자’로 제한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조례를 마련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관계자는 “자연녹지는 개발에 전혀 제한을 받지 않고 보전녹지는 타인 명의를 빌리면 손쉽게 건축이 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성남시 강효석(姜孝錫)도시개발과장은 “393번 지방도 주변의 일정 구간을 완충녹지로 지정하는 방안을 포함한 대책을 종합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김형철(金炯喆)교수는 “종합적 계획이 아닌 개별법에 따라 개발 행위가 진행되면서 무분별한 난개발이 이뤄지고 있다”며 “정책 입안자와 기관장의 난개발 방지를 위한 의지와 환경 보존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