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이슬람 문화권을 휩쓸고 있다. 그 중에서도 10년 전 걸프전의 무대가 됐던 쿠웨이트와 금융의 중심지 바레인은 서구 문화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미국 문화는 더 이상 ‘이슬람의 적’이 아니다. 여성도 점차 정치 경제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쿠웨이트 국제공항을 빠져나와 호텔 버스로 쿠웨이트시티 시가지로 향하는 대로에 들어서자 곳곳에 건축 현장이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궁궐 같은 호화저택이었다.
운전을 하던 호텔 직원은 “걸프전이 일어난 뒤 황폐화된 지역인데 요즘 들어 새 집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면서 건설 경기가 활황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0년 전 포연으로 뒤덮였던 사막은 이제 커다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걸프전은 쿠웨이트 현대사의 분수령이었다. 이라크의 침공(90년 8월2일)은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원유매장량을 가진 중동의 부국 쿠웨이트를 한순간에 깊은 나락으로 빠뜨렸다.
“당시 751개의 유전에 화재가 발생했고 재산피해는 800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쿠웨이트 파이낸스 하우스(KFH)의 모하메드 술레이만 알 오마르 이사는 “전후 정부는 경제재건을 위해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펼 수밖에 없었다”면서 “하수도 발전소 등 기간시설 공사를 위해 외국자본을 대대적으로 유치했다”고 말했다. 현재 석유산업을 제외한 민간 공공 분야에 있어 외국자본 투자한도는 51.49%에 이른다.
오마르 이사는 “슈웨이크(Shuwaikh)의 무역자유화지대(KFTZ)도 개방정책의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500여개 외국업체가 입주한 KFTZ는 머지않아 쿠웨이트 경제의 용광로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난해 국제 유가 급등세로 쿠웨이트는 큰 덕을 보았다.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원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지난해 약 15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다. 알리 알 셰마리 아랍리서치센터(ARC)소장은 “전쟁전 1000억달러에 달했던 차세대기금(FGF)은 전후 복구에 550억달러를 지출했으나 최근 유가 상승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FGF는 정부가 매년 예산에서 무조건 10%를 따로 떼어 적립하는 ‘보험’ 성격의 국가기금. 셰마리 소장은 “쿠웨이트 경제는 안정궤도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걸프전은 쿠웨이트에 서구 문화의 급속한 유입을 초래한 신호탄이기도 했다. 해변가 걸프로드에 위치한 쿠웨이트 최대의 백화점 ‘수크 샤르크’는 그 대표적인 예.
99년초 개관한 수크 사르크 1층엔 구치 크리스찬디오르 베네통 등 고급 브랜드 옷가게가 즐비했다. 매장은 젊은 고객으로 가득했다. 베네통 옷을 고르던 치과의사 갈리아 알 가리(28)는 “옷과 화장품을 살 때면 꼭 이 백화점에 온다”며 “디자인이 화려한 제품이 많아 좋다”고 했다.
지난해 9월 개장한 여성전용 헬스클럽 ‘챔피언스’의 폭발적인 인기도 이슬람 여성의 삶에 큰 변화가 일고 있음을 잘 보여주었다. 자브리야시에 위치한 4층 건물은 수영장 사우나 테니스장 400m트랙 등 각종 체육 시설과 초호화 미용실을 갖추고 있다. 한 경비원은 “한 달 이용료가 300디나르(약 900달러)나 되지만 항상 만원”이라고 말했다.
쿠웨이트에서 검은 차도르를 한 젊은 여성이 휴대전화로 깔깔대는 풍경은 특별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쿠웨이트대 교정에서 만난 한 여대생은 “많은 여학생이 휴대전화를 사줄 수 있는 남자를 친구로 선택한다”고 말했다.
이슬람 문화연구의 권위자인 쿠웨이트대 압둘 가파르 알 샤리프 교수는“10대후반∼20대초반 여성의 휴대전화 보급률은 50%정도”라면서 “중동에서 여성이 가장 먼저 운전을 시작한 나라도 쿠웨이트”라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지도층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개혁 개방이 가져온 서구화는 이슬람 전통 의식이 강하고 ‘미국적인 것’에 대해 반감이 큰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간에 갈등을 빚게 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지도층의 만성적인 부패나 유명무실한 각종 규제가 큰 문제”라고 비판한다. 구하려면 얼마든지 술을 구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음란물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도 금주나 사전검열 등 눈가리고 아웅하는 제도가 많은데 이를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인터뷰/알 마사에드 前국회의장 ▼
압둘 아지즈 파드 알 마사에드 쿠웨이트 전 국회의장(91·사진)은 걸프전으로 굴곡진 쿠웨이트 현대사의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이다.
30년간의 정치생활을 마감하고 지금은 언론사와 호텔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알 마사에드씨는 61년 쿠웨이트의 첫 영자신문인 ‘데일리뉴스’를 창간하고 2년 뒤 정계에 뛰어들었다.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에서 칼튼 타워호텔과 일간지 ‘알라이 알 암’을 운영중인데 신문과 잡지의 인쇄에 필요한 종이와 잉크를 전부 한국에서 수입한다고 말했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나이를 무색케 할 만큼 정력적인 모습으로 90년 이라크 침공과 걸프전을 회상했다.
“이라크 침공을 받고 모두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뒤이은 걸프전은 쿠웨이트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91년 그는 국회의장 자격으로 미군의 쿠웨이트 주둔 협정에 서명했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지만 국가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미군을 주둔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미군 주둔을 10년간 연장하는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미군에게 돈을 주고 안보를 사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알 마사에드씨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소속 6개국은 장래에 미국식 연방국가를 창설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중”이라며 “올해 초 GCC가 외부침략에 공동 군사대응으로 맞선다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단일통화제에 합의한 것도 연방국가 창설의 전단계”라고 밝혔다.
그는 또 80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 취임식 때 초청을 받았지만 가지 않았던 일화를 소개하면서 “미국과 서구 열강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아랍국가를 교묘하게 분열시키고 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쿠웨이트 시내에 여성 운전자가 많은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하자 그는 “프랑스 주재 쿠웨이트대사와 쿠웨이트대 총장을 비롯해 경제계에도 여성의 활약이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은 더 늘어나야 하며 투표권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사랑방 좌담 '디와니야' ▼
‘디와니야’는 한국의 ‘사랑방 모임’에 해당하는데 아랍 국가 중 쿠웨이트에만 있는 독특한 관습이다. 손님을 집으로 초청해 정치 경제 사회 현안은 물론 가정사까지 온갖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일주일에 한두 차례 열며 참가 인원과 시간은 제한이 없다.
새해초 저녁 바람이 쌀쌀했지만 모하메드 알 카디리 전 모로코 대사의 자택 거실은 좌담의 열기로 가득했다. 안주인 투라야 알 바크사미가 마련한 전통차와 다과 둘레에 손님이 6명 앉아 있었다. 이웃 주민 2명과 울프 발덴 스웨덴 영사, 독일대사관 관계자와 포르투갈인 유학생 등이었다. 기자는 쿠웨이트 한국대사관 주선으로 이 모임에 끼었다.
알 카디리씨는 “디와니야는 쿠웨이트의 민주주의적 전통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쿠웨이트는 중동 국가 중 유일하게 직선제 의회를 갖고 있다. 1963년 이래 직접투표로 의회를 구성하고 있다.
알 카디리씨는 “원래 디와니야는 남자만 참석했는데 요즘은 여성이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안주인은 한시간 가량 디와니야를 지켜보고 있던 기자를 안내해 집안을 살펴 볼 수 있도록 했다. 꽤 유명한 화가인 그녀는 거실과 작업실에 걸려 있던 그림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며 전시회 팜플렛도 건네주었다. 뒤늦게 모임에 합류한 쿠웨이트 청년 2명이 전통 아랍음악을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우드’(기타)와 ‘듬북’(북) 반주에 맞춰 예멘 이집트 등 아랍국가의 민요가 이어지자 남자 손님은 박수를 치고 여성으로는 유일한 참석자인 안주인은 ‘얄링’ ‘얄링’ 하며 추임새를 넣었다.
알 카디리씨는 “선거철이면 매일 열리다시피 하는 디와니야는 기초여론 형성에 큰 몫을 한다”고 설명했다. 저녁 8시에 시작된 이날 디와니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폭력사태, 여성 참정권 문제, 유학간 자식 자랑, 미국식 개혁, 한국의 통일 문제 등에 관한 격의 없는 대화 속에 밤 12시가 넘도록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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