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예술’을 만났습니다.
신촌 연세대나 홍익대 앞에서 벽화를 봤냐고요? 아닙니다. 지하철역 출입구에서 봤습니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고 흙탕물까지 흘러내리는 곳에서 예술이라니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요? 죄송하지만 아닙니다.
서울 중랑구 묵동 태릉고교앞 6호선 태릉역의 출입구를 봤습니다. 유리로 지붕과 벽을 이은 구조물이었습니다. 고급 카페 외벽을 연상시키더군요. 건축물에서 흔히 캐노피(canopy·원뜻은 ‘비행기 조종석의 투명한 덮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지난해 8월 7호선이 개통하며 선보인 이런 캐노피들은 6, 7호선 25개 역의 57개 출입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보통 다른 출입구에는 덮개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평평한 지붕 하나 덜렁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 웬일이냐고요? 사연이 좀 있습니다.
역 출입구는 주로 상가가 늘어선 인도를 비집고 들어서게 되지요. 출입구 위에 지붕을 올리면 대략 건물 2층 높이가 되어 간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민원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길 건너에서도 반대편 상가가 잘 보이도록 유리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겁니다.
게다가 6, 7호선 일부 역에는 승강장까지 너무 깊어 출입구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붕이 없으면 비싼 기계가 눈비 맞아 고장날 거 아닙니까.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기왕 할 거 좀 아름답게 해보자’는 의견과 만나 지금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할까 궁리하던 지하철건설본부가 수소문 끝에 유리 건축물로 이름난 3개 건축회사를 찾아내 설계를 부탁한 결과였죠.
주의를 좀 기울여 보면 5개의 다른 설계 모양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열차바퀴가 굴러가는 이미지, 부채를 편 듯한 것, 한복 소매 등. 보기에도 좋습니다.
한 설계자는 “복잡한 출입구 주변에 유리를 써서 경쾌하게 보이도록 했다”면서 “길이 지하로 사라지지만 계속 이어지는 이미지를 준다”고 하더군요. 다른 설계자는 “햇빛과 인공 조명이 자유로이 역 안팎을 드나들며 이용자들을 시각적으로 흡인하는 효과가 있다”고도 합니다.
물론 덮개를 만들지 않은 출입구보다 비용은 많이 들었습니다. 대략 8000만∼1억원 정도. 하지만 이용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습니다. 한 행인은 “그 정도 돈으로 이렇게 좋은 구경거리를 만들었다면 괜찮지 않냐”고 되묻더군요.
빌딩 전면에 유리를 사용해 안과 밖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건축 기법은 우리나라에선 90년대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개인주의가 강해지는 현대에 ‘교감’을 의미한다나요. 아마 지하철도 시민과의 만남을 간절히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길 위의 ‘빛’을 한번 따라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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