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시인 부부가 30여년간 살다 떠난 서울 관악구 남현동 ‘예술인마을’ 자택. 관리인도 없는 빈 집 대문 앞을 지나면 ‘컹 컹 컹’ 개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개 한 마리가 몇십년만에 찾아온 혹한을 견디면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의 쓸쓸한 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봉산산방(蓬蒜山房)’으로 불리는 이 집의 주인을 대신하고 있는 수캐는 시인이 살아 생전 ‘이름도 없는 똥개’라며 몇 년간 마당에서 키웠던 잡견 한 쌍 중 한 마리. 지난해 11월 병원에 입원한 미당이 사경을 헤메고 있을 때 이들은 엄동설한 속에서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아 주위를 놀라게 했다.
생전에 미당은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 이 개가 동네 휴지통을 뒤지며 양식을 구해 날라 새끼를 부양한다’는 소식을 병상에서 듣고는 “허어, 그 놈”하며 모처럼 웃었다고 한다.
지난달초 미당의 유품 정리를 위해 이 집을 찾았던 제자 윤재웅 교수(동국대 국어교육과)가 딱한 마음에 이들의 거처를 옮겨주려고 했다.
새끼와 어미는 순순히 따라나왔지만 수캐는 한사코 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도망을 다녔다. 몇 시간 실랑이를 벌였던 윤 교수
는 결국 나머지 개 식구만 자신의 시골집으로 데려갔다.
미당 집은 이미 보안업체의 도난방지 시스템이 설치돼 있어 도둑 걱정은 없다. 그래도 수캐는 미당이 세상을 뜬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지부동이다. 얼마 전 다른 암캐를 데려와 새로 신접살림을 차린 것으로 봐서는 영영 이 집을 떠나지 않을 태세다.
‘우리 집의 개식구가 세 마리 있는데요/ 내 늙은 아내가/ 끼니때마다 인심을 쓰느라고/ 개밥을 넉넉하게 노나주니까/ 개 식구엔 밥찌끄러기가 언제나 남아서요/ 굶주린 서울의 참새떼들이/ 그 남긴 밥풀들을 쪼아먹노라고/ 나무마다 매달려서 노래하고 살아요/ 그래서/ 내 아내도 좋아라고 웃어요’(서정주 시인이 1998년3월1일에 쓴 ‘이심전심’)
이 개의 고집은 시인이 생전에 이같이 자신들에 대한 애정을 시로 표현해준 것에 대한 보답일지 모른다. 냄비처럼 끓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우리 문학계 풍토에서 ‘국보 시인’에 대한 추모의 정성이 충견(忠犬)보기 민망하지 않을 만큼은 되어야 할 것이다.
diga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