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라마단 기간 동안 무슬림들은 해가 떠서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건강한 신도라면 누구나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을 때 음식을 먹지 못하도록 경전인 ‘쿠란’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식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무슬림들은 가난한 이의 고통에 공감하기 위해서라거나 예언자 무함마드의 계시받음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설명을 붙인다. 어떤 설명이건 몸을 통제해 이슬람의 종교적 덕목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사실 성욕과 식욕을 제한해 몸을 통제함으로써 영혼을 훈련하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여러 종교에서 두루 찾아볼 수 있다. 전면적이건 부분적이건, 단식은 몸의 배고픔을 통해 무언가 절실하게 마음에 느껴지는 바를 나타낸다. 도대체 단식의 방법으로 그토록 절실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뼈아프게 속죄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단식은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자타(自他)에 확인시키는 한편, 잘못된 행동으로 오염된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는 자세를 보여준다. 이런 금욕적 태도가 극단화되면 중세 기독교처럼 인간의 육신 자체를 혐오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초월적 존재가 자신에게 관심 보여주기를 단식을 통해 간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배를 곯고 있는 불쌍한 영혼에 신적 존재가 연민의 눈길로 돌보아 주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태도이다. 유대교인들이 단식을 ‘야훼의 귀 기울이게 하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나라의 젊은 여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다이어트 열풍에도 종교적 단식과 비슷한 정신 구조가 함축되어 있다.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살이 쪘다고 여겨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여성들은 처절하게 다이어트를 하며 자신의 ‘탐욕’을 속죄한다. 여성들은 자신의 살찐 몸을 다이어트로 학대하면 할수록 그만큼 스스로 정화된 듯한 느낌을 갖는다.
또한 다이어트에 목숨을 걸면서 여성들은 타자(他者)의 선망어린 시선을 애타게 갈구한다. ‘그대’를 위해 이렇게 온몸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의 눈길을 끌기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은 모든 것을 건다.
다이어트가 종교적 단식과 차이가 있다면 초월적 존재의 동정을 기원하는 대신, 또래집단이 보여주는 육체적 인정을 목말라 한다는 점이다.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