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 전 프랑스 외교 달인이 꼼꼼하게 적어놓은 외교와 협상술의 미학. 태양왕 루이 14세의 오른팔이었던 저자가 어린 루이 15세를 위해 쓴 이 책은 국가 운명을 좌우하는 협상술의 중요성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듯 섬세하고 상세하게 적었다. 동양의 손자병법과 서양 군주론의 엑기스만을 뽑아 적은 이 책은, 21세기의 문을 열고 들어선 우리에게도 싱싱하게 그 메시지가 전해온다.
외교관은 국익 관리의 최전방에 선 무사이자 국가 불이익의 싹을 발견해 내는 파수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협상의 주역인 외교관의 자질이 무척 중요한데 그것을 쪽집게로 집어 주듯 일러주었다.
통찰력과 순발력, 폭넓은 이해력과 지식, 예리한 분별력, 무엇보다 신뢰감을 주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외에도 의전관계, 외국어 무장, 돈과 여성의 힘 활용, 깨끗한 사생활 관리, 기록하는 습관 등 마치 어머니가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듣는 듯하다.
칼리에르는 큰 붓과 가느다란 붓을 번갈아 쓰며 ‘협상술의 아름다움’이라는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 책의 중심인물인 대사(大使)는 명예로운 첩자로, 세계의 무대에선 배우로, 때로는 심리학자와 연설가로 변신해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잘 소화해 국가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가는 능력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외교에서는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며, 전문성을 무시한 외교관 임명은 ‘바보 수출’이라고도 했다.
실제로 외교무대에서 능란한 말잔치를 벌이는 입보다는 진실한 마음을 담은 눈으로 하는 외교가 효과적이었고, 경험이 부족한 비전문가의 임명은 심각한 국가 불이익을 불러오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칼리에르의 외교협상 지침서를 읽으면서 밀려오는 동감의 물결에 수도 없이 무릎을 쳤다.
그는 곳곳에 유머장치까지 마련해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번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했다. 그를 불러내어 ‘협상술의 팔씨름’이라도 한판 벌이고 싶은 충동마저 일었다.
군주를 CEO나 경영간부로, 협상을 경영으로 이해하면 현대적 경영기법도 옛 지혜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깨닫게 된다.
33년 전 처음으로 외교관의 길에 들어섰을 때 이렇게 구체적인 지침서를 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큰 길잡이가 되어 주었을까. 외교와 협상력의 노하우를 찾아 그리 먼 길을 돌지 않아도 됐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외교관의 꿈을 가진 젊은이 뿐 아니라 경영인의 길을 갈 젊은이에게도 몇 년, 몇 십 년 걸려 배울 지혜를 몇 시간에 배우는 방법을 안내해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서 첫장을 열면 쉽게 마지막 장과 만나게 된다.
협상술의 열매를 알알이 따서 담근 포도주를 마신 뒤 맴도는 그 향에 취해 오랫동안 즐거웠다. 300년 묵은 지혜의 보고인 이 책은 300년 뒤에도 꼭 필요한 책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김 승 영(주 아르헨티나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