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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대우 비자금 어디로 갔나

입력 | 2001-02-02 19:00:00


김우중 전 회장의 지시에 따라 분식회계에 가담한 대우그룹의 전문경영인들이 잇달아 구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경영인이 ‘오너 황제’의 권위에 저항하기 어려운 경영 풍토를 들어 동정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분식회계 규모는 금융감독원의 고발장에 적혔던 23조원보다 검찰 수사를 통해 2배 이상 늘어나 모두 49조원으로 밝혀졌다. 천문학적인 분식회계가 가능했던 것은 조직적 적극적으로 거짓 장부를 꾸미고 경영 부실을 숨긴 전문경영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재무제표를 투명하게 작성하고 감사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방향으로 처리돼야 한다. 분식회계 때문에 나라경제가 휘청거린 사고를 겪으면서도 투명한 기업회계 시스템을 확립하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에 미래가 없다.

투명하지 못한 회계관행은 외자유치에 걸림돌일 뿐만 아니라 주식 저평가의 주요 원인이 다. 이런 고통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회계관행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요구하는 수준으로 올라서 주주와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회계법인들도 수주에 연연해 ‘먹이를 주는 손을 물지 않는다’는 안일한 모럴 해저드에 빠져 있었다. 이번에 회계장부 조작을 눈감아준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이 처벌을 받게 됨으로써 엄정한 회계감사 제도가 확립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권에서 10조원 이상의 사기대출을 받고 부실 회사채를 남발해 은행과 일반 투자자에게 엄청난 손실을 준 것이다. 특히 대우그룹 계열사에는 금융기관을 통해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돼 전 국민을 피해자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우그룹은 수출대금을 빼돌리는 수법으로 영국 런던금융센터(BFC)에 30여개의 비밀계좌를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BFC 비자금 중 일부가 국내로 유입돼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쓰였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김 전회장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진상 규명이 어렵다.

나라 경제를 부실의 늪에 빠뜨린 김 전회장은 해외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하루빨리 귀국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검찰도 자진 귀국에만 기대하지 말고 인터폴을 통한 강제귀국 절차를 밟아서라도 김 전회장의 신병을 확보해 모든 의혹을 풀어야 한다. 특히 거액의 비자금이 어디로 갔는지를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