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덜 위험한 열강’이란 이름은 아마도 20세기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얻은 가장 명예로운 애칭일 것이다. 미국 국제정치학계의 글쟁이들이 가끔 썼던 이 표현은 ‘열강은 본래 위험한 존재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대개의 전쟁이 강대국의 영토 넓히기와 패권주의 때문에 일어났다. 2차대전 때의 일본과 독일이 대표적으로 위험한 열강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힘을 가졌다 해서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국제평화를 위협하지 않는 양식 있는 열강이라는 것이다.
▷위험하지 않은 열강이 되기 위한 첫째 조건은 국내적으로 합리성이 통용되는 민주정치다. 민주정치를 제대로 하는 나라들이 전쟁을 도발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군주국이나 독재국가와 비교해 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왕이나 소수 권력자가 지배하는 나라는 전쟁도 쉽게 결정할 수 있겠지만 다수가 합의해야 할 경우에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이렇게 다수가 결정권을 갖는 공화제 국가들이 서로 싸우지 않으리라는 가설은 칸트가 처음 제시했고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양식 있는 열강의 두 번째 조건은 국제여론을 존중하는 태도다. 민주국가도 그 국정 주도세력이나 국민여론이 한때 국수주의로 흘러서 국제평화를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국제여론 존중이 또 하나의 조건으로 중요하다. 3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처음으로 그 대외정책에 대한 국제여론을 직접 접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의 우방인 서유럽국가 대표들도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는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대해 군비경쟁을 야기할 것이라며 우려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미국은 두 차례의 전쟁을 주도해서 시비도 있었지만 대체로 명분 있는 세계경찰 역할로 인정받았다. 1991년 걸프전은 이라크의 침략행위 응징이었고 1999년 코소보 공습전은 소수민족 학살을 제지하기 위한 개입이었다. 두 전쟁에서 국제여론의 지지 아래 미국의 우방국들로 구성된 다국적군이 모두 승리했다. 앞으로 걸프전이나 코소보전 못지 않은 어려운 일들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한다면 미국은 국제여론에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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