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라.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만 실제로 행동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실업률이 2%대였던 97년말까지도 나의 회사 직원들은 내가 아무리 외쳐도 자기계발에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중장년층 관리자들은 엑셀시험에서 백지를 내기도 했다.
외환위기가 오자마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정하는 책을 매주 한권씩 읽어라. 컴퓨터는 지위와 나이를 막론하고 필수이다. 3개월마다 시험을 본다. 탈락자는 퇴사하라.” 3개월후 컴퓨터 시험에서는 60대 임원까지 모두 통과했다. 회사를 그만두면 갈 곳이 없다는 점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어는 항상 고요한 바다에서 당신을 노리고 있으며, 행운의 여신이 짓는 미소는 1초뿐이다. 지금 먹고 살 만하다고? 당신의 직장이 영원할 것이라고? 지금 손님이 있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공기업이라고? 물려받을 재산이 있다고? 지금 당신이 믿는 그 어떤 것도 내일 휴지통에 던져질 수 있다. 삶은 내일이라도 뒤집어진다. 그러므로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라.
인텔회장 앤드루 그로브는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는 책에서 “두려움은 승리하기 위한 열정을 만들어내고 유지시킨다”고 말한다. 긴장을 하거나 두려움이 생기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왜 그럴까? 원시인들이 가장 긴장했던 순간은 사냥할 때였다. 사냥 중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게 되면 새로운 피가 즉시 공급돼야 혈액이 응고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혈액순환을 촉진시키려면 심장이 미리 쿵쾅거려야 했다. 이것이 지금도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두려움을 가지면 심장은 고동치고 새 피가 흐른다. 그 새 피는 현실에 게으르게 안주하려는 당신의 썩은 피를 배출시킨다. 그리고 당신을 결심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나는 돈 문제로 인해 삶이 통째로 쓰레기 속에 던져지는 경험들을 일찍 했기에 현금이 20억원정도 쌓인 뒤에야 비로소 쓰기 시작했다.
불경기가 되어서야 구조조정을 하는 회사들이 한심하지 않은가?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삶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으면 아무리 경기가 좋아도 절약하고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놀 땐 놀고 쓸 땐 쓰며 살자고? 말년에 고생을 하겠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편하게 살고 싶어 이민을 가겠다고? 노력하지 않는 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에 없다. 여유를 느끼며 살자고? 삶의 형태에 우열은 없으므로 느리게 사는 법을 철저히 따른다면 나도 존경한다. 다만 여유는 부자에게 더 많지 않을까?
두려움을 가지라는 말이 비관론자가 되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준비없는 낙천주의는 사상누각과 같다. 생쥐조차 도망갈 구멍을 3개는 만들어 놓은 뒤에야 나와서 돌아다닌다. 생각만 가득한 칸트의 입에는 조만간 거미줄이 쳐진다. 행동하는 나폴레옹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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