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부동산신탁의 부도는 공기업의 부도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그런데 공기업이 주도하는 사업이어서 믿음을 가지고 분양을 받기 위해 목돈을 넣었다는 고객들은 땅을 치며 통곡하는데 경영자는 묵묵부답이고 책임지려는 자가 아무도 없으니 의아하기까지 하다.
▼'한부신'부도 책임소재 불분명▼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인 지난 2년3개월 동안 은행과 재벌이 줄줄이 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금융과 기업부문의 본질적인 구조개선이 없이는 살 길이 없겠구나 했는데 한부신 사태를 보니 공공부문에 있어서 본질적인 체질개선 없이는 정부의 경쟁력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기업의 구조적인 문제는 우선 부실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데 있다. 공기업이란 세금으로 출자된 기업이니 만큼 실제로 부실이 발생해도 아우성칠 주주가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선정을 주도할 직접 이해 관계자가 없어 비효율은 어쩔 수 없다. 한부신은 공기업의 자회사이므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법적으로는 부도가 발생하면 모회사인 한국감정원이 출자한 자금만큼만 떼이면 되는 주식회사일 뿐이다. 따라서 부실의 책임을 전적으로 정부가 지기에도 법적 근거가 부족한 현실이다. 결국 부실이 부동산 시장의 극심한 침체로 말미암은 것인지, 경영진의 경영능력 부재나 부패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무자격자를 무리하게 경영진에 포진시킨 정치권에 있는 것인지 따져 봐야 할 것이다. 만일 부실을 은폐하기 위해 공사(公社)라는 이름을 팔면서 또 다른 부실을 일으켰다면 경영진은 추가적 부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둘째, 부동산신탁과 같이 위험한 사업을 정부가 간접적으로나마 관여해야만 했나 하는 점이다. 설립 당시인 91년만 해도 아파트나 상가를 불문하고 분양만 되면 프리미엄을 받고 되팔던 시대에는 위험도가 극히 낮은 사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시장이 침체돼 부실이 계속 쌓이고 있었을 텐데 이를 해소하지 않은 채 부실을 키워온 것은 정부의 잘못이다. 이는 관료와 정치권의 이해와도 연관돼 있을 것이다. 기업이 부실이라는 문제가 있으나 아직도 정치권의 논공행상이나 관료의 인사적체 해소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독점체제를 유지해 이익을 보전하려 했던 발상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모든 위험한 공적 사업은 하루 빨리 민영화하고 산업구조도 경쟁체제로 바꿔야 할 것이다.
셋째, 공기업에 대한 기업 지배구조상의 문제다. 경영자 선임의 자율성, 중립성이 확보되고 성과평가제도에 있어서 획기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99년 정부투자관리기본법에 의해 개설된 사장추천위원회제도는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공사의 정부 의존도를 더욱 증대시키고 있는 악법으로 비판받고 있다. 재벌에 대한 지배구조에만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정부도 공사의 자율권을 확보하고 유능한 경영진에 의해 공사가 운용되도록 이사회의 중립성을 공고히 하고 중립적인 이사들에 의해 유능한 경영진이 선출되도록 하는 지배구조의 개선을 조속히 이뤄야 한다.
▼위험한 공적사업 민영화해야▼
유능한 경영진이 선출됐다고 해도 또 다른 과제는 이들의 경영을 감시 감독하는 체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 기업이야 주주와 자본시장이 감시하지만 공기업의 경영자들은 인사권자인 정부가 가만있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기업의 자회사는 경영감시라는 측면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공정거래 차원의 내부거래만 조사 받을 뿐 부실의 경우에도 모회사 사장이 눈감아 주면 그냥 넘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13개 공기업에 대해서만 이뤄지는 경영평가를 정부출자회사와 이들의 자회사에도 확대 적용하여 효율경영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한부신의 부도로 정부는 공신력에 타격을 입은 셈이다. 국가부도 위기 때문에 대외적인 신용불신을 받았던 정부가 이제는 국민으로부터도 불신을 받게 된 것이다. 문제는 단기적인 대응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이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공기업 구조개편을 서두를 때라는 사실이다.
선우 석호(홍익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