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니 받아줄 매수 주체가 없고 안 팔자니 돈이 묶이고….’
외국인투자자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연초부터 3조원을 ‘나홀로 순매수’하며 유동성장세를 주도해왔지만 개인과 기관의 추격 매수가 없어 이제는 팔 시점까지 놓칠까봐 걱정하는 처지다. 이익실현도 못한 채 2조7000억원이 묶여 있다. 하지만 중장기펀드의 경우 급하게 매도기회를 노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여 최근 이틀간 2200억원 순매도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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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빗나간 시나리오〓외국인투자자들이 기대했던 것은 미국의 금리인하와 국내 자금시장 선순환. 금리가 내려가고 금융시장 여건이 좋아지면 주식시장으로 돈이 몰린다고 보고 대량 매수했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러면 개인이 곧이어 따라오고 기관도 분위기를 봐서 매수에 동참할 경우 매도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
하지만 개인과 기관의 반응은 의외로 썰렁했다. 개인들은 실속만 챙겼고 기관도 주가가 오른 틈을 매도 기회로 활용했다. 고객예탁금은 연초 대비 6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고 그나마도 계속 줄어드는 추세. 99년 10월 54조원에 달하던 주식형펀드의 잔고가 최근 28조원으로 줄었다. 한 외국계증권사 펀드매니저는 “돈은 묶여있는데 물량을 털어내는 대로 주가는 떨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주식을 더 매입하더라도 주가가 오른다는 보장이 없어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외국인 어디서 틀렸나〓중단기 펀드의 국내 시장 접근 포인트는 자금시장 선순환 여부. 현대증권 오현석 선임연구원은 “외국인들은 회사채 신속인수 등으로 자금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저가주를 중심으로 폭 넓게 국내 주식을 매수했지만 미국과 국내 경기의 불안감이 개인들의 추격 매수를 어렵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금리가 떨어지고 투기등급 채권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증시로 갈 돈이 오히려 채권시장으로 몰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리 10% 이상의 이자에 정부 보증으로 리스크 부담도 줄었기 때문이라는 것.
기관의 보수적 매매패턴도 눈여겨볼 대목. 고객의 환매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연초부터 6600억원을 순매도했으며 주식형펀드나 뮤추얼펀드로의 신규자금 유입도 거의 없었다. LG투자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3조원의 연기금이 투신권으로 유입되고 현금비중도 높아져 있지만 펀더멘털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관은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주가가 560선까지 빠진다면 저가 메리트가 있는 종목을 중심으로 기관의 매기가 유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더 팔까?〓걱정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6일 818억원의 순매도도 매도규모가 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매수가 줄면서 발생했다. 개인도 매수여력이 생겼기 때문에 수급상황이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 미래에셋 이정호과장은 “목표 수익을 거둔 단기펀드들의 이탈에 너무 민감할 필요는 없다”며 “매수 시점을 기다리는 대기자금도 적지 않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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