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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불멸과 유한 사이의 순정

입력 | 2001-02-07 10:41:00


좋은 성냥갑은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마찰지가 고운 입자를 이루고 있어 성냥이 미끄러지거나 긁히지 않아야 하고, 심지가 잘 말라 있어야 하며, 대가 뚝뚝 부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렇듯 3박자를 고루 갖춘 성냥갑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 이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불량스러운 게 성냥갑이고, 그건 잘 점화되지 않아 문득문득 멈춰서야 하는 삶과 비슷하다.

성냥갑이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듯, 남자라면 평생 원만한 관계를 맺고 싶은 게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이다. 그러나 술이 과하면 아내의 원망을 받고, 아내를 사랑하면서 술과 예술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다.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창작과비평사)은 한 청년 예술학도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선생님이 되기까지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과 화해해온 과정을 담고 있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KBS교향악단 총감독을 거쳐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맡고 있는 저자 이강숙. 문예지에 소설을 투고할 정도로 문학에 심취했던 저자가 첫번째로 낸 이 산문집은 다소 거친 듯한 문체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의식과 소신으로 씌어져 있어 읽는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한다.

오랜만에 아내와 삶과 예술을 얘기한 날, 저자는 술이 마시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내에게 그런 날 술이 끼여들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비빔국수가 먹고 싶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내가 비빔국수와 물 한 잔을 주고 나가자 감춰두었던 양주를 마신다. 그러나 아내가 가져다준 물이 실은 청주였다. 색이 물과 비슷했던 것이다. 저자는 비빔국수를 맛있게 먹고 청주까지 비운다. 양주를 마셨다는 건 며칠 후 아내에게 고백한다.

‘술과 아내’라는 짧은 글의 내용이다. 여기서 빛나는 것은 아내와 저자와 술이 빚어내는 마음결이다. 저자는 이것을 아내와 자신 간의 ‘입장 차이’라고 부른다. 그 차이를 인정하되 감싸주는 게 사랑인 동시에 자유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늘에 사는 소녀는 땅에서 살고 있는 소년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로 시작되는 ‘소리 셋의 이야기’는 짧은 동화 형식을 빌린 저자의 예술론이다.

소녀는 소년에게 3가지 소리만을 가지고 놀라고 말했다. 그래서 소년은 소녀의 말을 따라 도, 미, 솔의 3가지 소리만을 가지고 놀았다. 소년은 도, 미, 솔을 가지고 여러 가지 노래를 만들 줄 알게 되었고, 많은 곡들이 소리 셋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녀는 소리 셋만 가지고 논다는 약속을 지킨 소년에게 솔, 시, 레의 3음을 다음 선물로 주었다.

이 책의 2부에서는 이와 같이 소박하고도 진솔한 저자의 예술론을 읽을 수 있다. ‘월광곡 이야기’, ‘브람스의 음악관’ 등 음악을 모르는 독자라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이 실려 있다. 제3부와 제4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음악교육과 음악풍토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대안들이 돋보인다.

황지우 시인은 발문에서 “음악의 불멸을 동경하면서도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이 삶에 갇혀 노상 조바심치는 저자의 순정에 끌리게 된다"고 이 책을 소개했다.

안병률/ 동아닷컴 기자mok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