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회의원이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다녀왔다. 초청받았다고들 하지만 미국 정부가 비행기표를 끊어주면서 와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주 낮은 의미의 초청인데,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앉은 연단에 함께 앉은 한국 정치인은 없었다.
▼후원회 결성 이젠 명분없어▼
취임식 때가 아니라도 한국의 의원들은 워싱턴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권에 뜻을 둔 의원들은 워싱턴에 지인(知人)을 많이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국인과 미국인 지인을 통해 미국 의원들을 만나 의원외교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가 1980년대 미국 국방부장관실에서 환경정책보좌관으로 일하던 시절, 그리고 워싱턴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시절에 만난 한국 의원들은 필자와 미국인들을 실망시켰다. 대화다운 대화 를 나누지 못하고 대접같은 대접 을 받지 못하고 워싱턴을 떠나는 의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깊이 있게 대화할 수 있는 의원들은 많지 않다. 혹평을 하자면 미국 의원들은 시간을 낭비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30분이나 1시간 동안 만나기로 약속했지만 막상 만나서 5분이나 10분만 지나면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약속한 시간이 모자라서 시간을 연장하거나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섭섭하게 헤어지는 의원들을 본 적이 없다.
의원외교가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의미 있는 외교가 가능하려면 그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한마디로 유식해야 한다. 한미행정협정(SOFA), 노근리사건, 북미간 현안, 국가미사일방어체제, 보수주의, 진보주의 등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의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미국에 다녀왔다면 여행의 목적과 성과를 어디엔가 기록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그들의 여행기를 정말 읽고 싶다. 그들은 정말 워싱턴에 다녀와야 할 목적이 분명히 있었던가? 의원외교가 정말 필요하다면 현안에 대해 공부를 하고 미국에 가야 한다. 대화를 5분도 끌어가지 못할 정도의 지식과 정보로는 제대로 된 외교활동을 할 수 없다.
의원들은 워싱턴과 미국의 주요 도시에 한인들의 후원회를 조직하기도 한다. 필자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 미국에 살면서 핍박받는 야당인사들을 따뜻하게 반겼고 민주화를 위한 모임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에 후원회를 둔다는 것은 명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의원들이 개인적으로 친구들을 둘 수 있지만 정치적인 조직을 둬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필요한 지식과 정보, 분석력을 키우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국가 정책의 수립, 집행, 평가에 대해 공부할 시간이 없다. 그들은 선거구민들의 경조사에 쫓아다녀야 하고 정책연구는 당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유능한 사람들이 정치인을 지망하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국회에 들어가면 무능해지거나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정파의 결속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미국 의원들과 함께 현안들에 대해 깊이있게 대화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국회에 들어가면 무능해지는 한국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의원외교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문화 배우고 오길▼
그리고 워싱턴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의 위엄이 빨리 세워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약소민족이라고 해도 이 시대는 약육강식의 세계질서 속에 있지 않다. 스스로 문명과 위엄과 권위를 갖추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다. 정치가 부패해서 경제도 망가진 나라는 존경받을 수 없다. 약소민족이라고 해도 예의가 있고 양심이 살아있는 나라는 다른 나라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정말 미국에 가고 싶다면 미국의 정치문화를 배우고 오길 바란다. 3권분립이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미국의 헌법정신과 의회는 행정부의 시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터득하기 바란다. 의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다. 국민의 돈을 아껴쓰며 조세정책, 재정정책이 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이루도록 노력하는 미국 의원들의 태도를 배웠으면 한다. 160조의 공적자금이 어디로 들어갔고 어떻게 쓰여졌는지 정확히 모르는 의원들은 워싱턴에 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최연홍(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