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 년 전부터 음악은 우리 문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시대와 민족에 따라 문화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지만, 음악이 없는 문화는 없었다. 크로마뇽인이나 네안데르탈인도 음악을 즐겼다는 증거가 있으며, 5만3천년 전에 만들어진 뼈 피리는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리코더와 거의 유사하다.
왜 모든 문화 속에 음악은 빠짐없이 끼어있는 것일까? 음악을 즐기려는 인간들의 욕구는 유전자 속에 내재된 본성일까? 다른 동물들도 우리처럼 음악을 가지고 있을까?
음악의 기원에 관한 연구는 음악학자들뿐 아니라 과학자들에게도 가장 매혹적인 연구 주제다. 생태학자들이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고래와 새들의 노래는 ‘음악의 기원’에 관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음악을 음조와 박자가 만들어내는 일정한 규칙의 패턴이라고 정의한다면, 흑고래가 바다에서 부르는 노래는 인간의 노래와 상당히 유사하다. 흑고래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노래에는 박자가 존재하며, 소절 단위로 나눌 수 있는 구조도 존재한다. 음 사이의 간격도 서양 음계와 유사하며, 사용하는 음역도 비슷하다.노래의 길이도 대중 가요보다는 길고 교향곡 한 악장에는 다소 못 미치는 정도. 고래 노래의 길이가 인간의 그것과 유사한 것은 고래가 인간처럼 상당히 큰 대뇌를 가지고 있어서 인간과 유사한 집중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고래의 경우 노래의 진행이 고전파 작곡가를 연상시킬 정도라는 사실이다. 하나의 주제가 연주되고 나면 화려하게 전개됐다가 다시 약간 변형된 형태로 돌아오는 ABA‘ 형태를 갖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운율이 있는 후렴구를 반복적으로 부르는 녀석도 있다. 이것은 고래들이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패턴을 기억해 두고 있다는 증거도 된다.
6천만년 전부터 진화의 길을 달리해온 고래와 인간이 유사한 음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음악을 창조한 종이 아니라 음악이 우리보다 먼저 태어났음을 시사해준다. 우리가 그 동안 귀기울이지 않았던 자연의 소리에 우리 음악의 모태가 들어있었던 것이다. (고려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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